▲2022년 7월 19일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 내 하청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정영현
조선소는 원청과 하청의 격차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하청 노동자는 무기계약직과 단기계약직으로 나뉜다. 특정 공정의 업무를 일정 기간 동안만 담당하는 '물량팀'도 있다. 그 외에 아웃소싱이라 불리는 2차 하청 인력도 있다. 고용계약을 하지만 사업자등록을 하고 개인사업자처럼 위장된 노동자, 프리랜서로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도 고용 형태와 계약 형태가 다르고, 임금 격차도 심하다. 이런 복잡한 고용구조 속에서 여성 노동자는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일당공으로 일하거나 고용계약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 중에는 여성이 30% 가까이 되지만 화기 감시나 청소, 밀폐구역 감시 등 간접부서에서 일하며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는다.
여성이 맡은 업무는 저평가되기도 한다. 도장업무는 전처리(파워공), 스프레이, 터치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터치업은 스프레이가 닿지 않는 구석까지 꼼꼼하게 붓으로 바르는 작업이다. 사람이 진입하기 힘든 좁은 공간에서 일일이 수작업하는 힘든 일인데, 여성이 많이 한다는 이유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평가된다.
그래서 이 업무는 다른 도장업무에 비해 임금이 적다. 예를 들어 원청에서 도장 단가로 26만 원을 책정하면, 스프레이 작업하는 하청 노동자는 14만 원 정도 받는 데 비해 터치업은 남성 12만 7000원, 여성 12만 2000원을 받는 식이다. 게다가 여성 노동자는 일찍 나와 작업준비를 해야 했고, 청소업무를 담당해야 했다. 물론 무급이었다.
여성 노동자는 숙련의 기회도 많지 않다. 물론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에는 경력 20년이 넘는 여성 용접사도 있다. 그런데 이들도 차별을 받는다.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하고 남성보다 경력도 오래되었고 일을 더 잘하더라도 여성 용접사가 받는 임금은 남성 용접사 임금의 70%에 불과하다.
차별은 오래된 관행처럼 붙어있다. 남성 중심의 사업장이기 때문에 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적어서 하루 종일 생리현상을 참으면서 일하기도 한다. 안전모나 안전화, 작업 도구도 여성 노동자의 신체와 맞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하청업체들은 동일한 단가를 받더라도 여성 노동자를 차별해서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챙기려고 한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바람은 여성 노동자에게도 불어닥쳤다. 거제에 생활 기반을 갖고 있는 여성 노동자는 거제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임금이 대폭 삭감되어도 그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고용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2020년 한 하청업체가 희망퇴직으로 노동자들을 내보낸 후 다시 정리해고를 시도할 때, 그 명단에는 경력도 많고 숙련도도 높은 여성 용접사가 포함되었다. 그 여성 용접사는 노조에 가입하여 끝까지 싸웠고 결국 복직했다. 거제통영고성(거통고) 조선하청지회가 임금 회복을 요구하며 파업했을 때, 하청 여성 노동자도 살기 위해 노동조합으로 뭉쳤다. 거통고 조선하청지회는 2024년 '여성 전용 화장실 증설'을 주요 요구 중 하나로 내걸고 있다.
올해 현대자동차에서 생산직 공채로 여성을 소수 채용한 것이 뉴스가 된 바 있다. 현대자동차는 창사 이래 여성을 기술직 신입 공채로 채용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성은 하청업체에서 일했는데 그것도 1차 하청보다 노동조건이 열악한 2차 하청업체에서 주로 일했다.
2차 하청업체가 일이 더 쉬워서가 아니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할 만한 노동자들이 주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1차 하청에서 일하더라도, 남성 노동자는 2년 넘으면 정규직 전환을 신청하기도 하지만 여성 노동자는 불가능했다고 한다.
하청 여성 노동자들은 사내하청 노조에 가입하고 노조와 함께 불법파견 소송에 참여하여 승소했다. 그런데 회사가 임의로 '정규직 발탁 채용' 할 때 여성 노동자는 대부분 제외되었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정규직 전환 합의를 끌어냈을 때에야 여성 노동자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건설 현장의 여성 노동자는 노조 활동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불평등한 구조를 없애나갈 수 있었다. 건설 현장은 조선소와 마찬가지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인맥을 통한 채용 구조라서 여성은 취업도 어렵고, 기술을 익히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건설노조가 기능학교를 운영해 여성 노동자를 훈련시키고, 고용교섭을 통해 여성 노동자도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경기도에서 형틀목수로 일하는 한 여성 노동자는 "건설노조의 조끼가 나의 방패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부가 건설노조를 탄압하면서 현장에서 그 방패가 사라지자, 여성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래서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운다.
여성 노동자 권리 침해하는 정부 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