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0월 7일 자 <현대일보>에 실린 '다방수필: 커피의 감칠맛'
국립중앙도서관
편집부장이던 김재경은 1948년 10월 7일 자 <현대일보>에 '다방수필: 커피의 감칠맛'이란 글을 실었다. 자칭 '신문쟁이' 김재경은 이 수필에서 자신이 커피를 즐기는 이유와 태도를 매우 재미있고 명쾌하게 써 내려갔다.
커피가 보건위생상으로 해로운지 이로운지는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였다. 김재경은 '신문쟁이'를 냉정한 이지적 비판력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시비를 가리는 정신노동자로 규정하였다.
김재경이 보기에 자신과 같은 정신노동자로서 일을 마치고 나서 그럴듯한 다방을 찾아가서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육체와 정신을 한꺼번에 쉬어가며 커피 한잔 마시는 재미를 모른다면 불쌍한 사람, 가엾은 인생이었다. 김재경이 커피를 마시는 첫 번째 이유는 커피가 정신노동자의 휴식을 돕는 음료였기 때문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맛이었다. 김재경은 커피가 주는 재미를 그 맛에서 찾았다. 미지근한 듯하면서도 따뜻한 맛, 좀 털털한 듯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커피의 향취(香臭), 커피의 신비력이었다.
이 매력적인 맛, 위대한 감칠맛 때문에 김재경은 스스로를 "커피의 노예" "커피의 포로"라고 고백하였다. 그에게 자고 일어나서 입안이 텁텁할 때, 밥 먹고 나서 속이 트직할 때, 원고를 쓰려고 기사 내용을 구상할 때 마시는 커피 맛은 매력적이었다.
그의 비유를 따르자면 담배 맛이나 술 맛쯤으로 이 커피 맛을 따라잡는 것은 족탈불급(足脫不及)이었다. 담배나 술이 맨발로 뛰어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김재경이 느낀 커피 맛이었다. 커피당 김재경의 시선에서 담배나 술을 커피와 비교하는 것은 "어림없는 수작"에 불과하였다.
한잔 커피가 지닌 "알뜰살뜰한 맛"을 알고 있는 김재경은 만사를 무릅쓰고라도 커피를 마셨다. 어느 정도였을까?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커피를 많이 마셔 "모가지가 열두 토막으로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름에 입고 다니는 겨울 양복을 잡혀서라도," "단 한 벌 밖에 없는 마누라 치마를 몰래 훔쳐다 팔아서라도," 이 커피 한 잔 값 50원은 매일 준비해 둘 작정이었다.
자신의 커피 사랑을 몇 가지 일상사와 비유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를 이렇게 정성껏 지냈다면 자신이 벌써 큰 효자로 이름이 났을 것이고, 부를 쌓는데 커피 마실 때만큼 재미를 느꼈으면 벌써 장안의 갑부가 되었을 것이었다.
젊은 시절에 여자 꽁무니를 무던히 쫓아다녔지만 이 커피 맛에 반하듯이 홀딱 반해보지는 못했다. 그런 자신이 지금은 여자가 아니라 커피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거의 "미치광이"처럼 커피에 반한 김재경은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천 놈이 천 소리 하고, 백 놈이 백 소리를 해도 커피 맛은 좋더라. 만일에 커피를 나쁘다고 욕하는 놈이 있다면 나는 커피의 존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걸고 싸우리라. 고금의 충신들이 위국진충(爲國盡忠)하여 일사보국(一死報國)하듯이 나는 일사보(一死報)커피차일배(茶一杯)하리라.
김재경은 서울 종로 2가에 있던 용궁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이 글을 썼다. 동서고금에 커피의 맛과 매력 앞에 이렇게 솔직했고 용감했던 인물이 있었을까 싶다.
커피당, 무직문화인, 커피병 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