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풍경을 어반드로잉으로

관촌마을 어반드로잉

검토 완료

임명옥(lmocom)등록 2023.07.07 14:49
내가 살고 있는 관촌마을은 작가 이문구 선생님의 고향이기도 하고 연작소설집 <관촌수필>의 배경이기도 하다. 요즈음  <관촌수필>을 다시 꺼내 읽으며 내가 살고 있는 관촌마을의 골목길을 산책했다.
골목길 풍경

20여 년 동안 이 동네에 살았지만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좁은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 보았다. 언덕배기에는 오래 전에 지은 집들이 방치된 채 녹슬어가고 있었다.

오래되어 빛바랜 주황색 기와, 녹슨 하늘색 대문, 가파른 골목 계단들...  낡고 오래되고 아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러나 오래전 어느 때인가는 누군가의 소중한 보금자리요 생활의 터전이었을 그 집들을 들러보고 바라보며 한순간 마음이 뭉글해졌다. 그래서일까, 골목길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햇빛이 따갑게 내리쬐는 어느 날, 오후의 햇볕으로 왼쪽의 노란 벽이 오렌지빛을 발하고 뒤쪽에 적벽돌로 옛날에 지은 연립주택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노란색 담장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잘 어울렸다. 그래서 노란색 담장이 있는 골목길을 그려보기로 했다.

신도심에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어떤 사람들은 주택이나 좁은 집을 팔아치우고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관촌마을의 골목길에는 여전히 오래된 담장과 벽에 노란 페인트를 칠하고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의 삶이 담긴 골목길 풍경을 그려보았다. 지어진 지 오래된 집들이지만 가꾸고 칠해서 노란 담장은 파란 하늘과도 잘 어울렸다.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로 팬드로잉을 먼저 하고 수채물감을 이용해 뒤쪽에는 붉은색으로 벽돌집을, 앞쪽은 노란색과 오렌지색으로 담벼락을 칠했다.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는 나이든 어르신들이 노란색처럼 밝고 따뜻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골목길 풍경을 완성했다.
관촌공원의 벤치

요즘에는 동네마다 공터를 이용해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어 놓는 공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마을에도 마을 이름을 따 관촌공원이 만들어졌다. 크지 않은 공원에는 수종도 다양해서 소나무와 벚나무는 물론이려니와 자작나무와 메타세쿼이아나무 몇 그루도 심어져 있어 나무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눈에 띄는 벤치 하나가 있다. 보령을 대표하는 작가 이문구 선생님의 책 제목이 책꽂이처럼 등받이로 만들어져 있는 벤치다. '관촌수필' 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개구쟁이 산복이',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산 너머 남촌' 등의 책 제목이 쓰여있다.

나는 관촌마을의 개성을 나타내주는 벤치가 마음에 들어 그려보았다. 벤치가 주인공이므로 벤치 뒤에 있는 키 큰 나무들은 생략하고 대신 하얀 구름이 둥실 떠 있는 파란 하늘로 색을 입혔다.

이문구 선생님의 글과 책을 쓴 노고에 대한 감사와 공원 벤치에 앉아 한 권의 책을 읽는 생활의 여유를 누구나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관촌공원의 벤치 그림이 완성되었다.
갈머리부락 방앗간이 있는 풍경

관촌마을에는 갈머리부락이 있다. 그리고 갈머리부락에는 마을 이름을 딴 오래된 방앗간이 있다. 도로에 면한 앞면은 조립식 패널로 지어졌고 좁은 골목길에 면한 옆면은 붉은 슬레이트에 세월의 더깨가 잔뜩 묻어있다. 심지어 붉은 슬레이트는 여기저기 기운 흔적들이 여러 곳이다. 

요즘의 나는 오래되어 낡고 녹슨 것들에 알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처음에는 저들도 반짝거리는 때가 있었을 테고 시간의 작용으로 낡고 녹슬어가고 있는 것이 나이 들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공감이 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이 먹은 갈머리방앗간을 그려보았다. 방아간이 아니라 표준어로는 방앗간이 맞지만 방앗간 주인이 만들어 걸었을 간판 이름 그대로 '갈머리방아간'으로 그려 넣었다.

설이면 흰 가래떡을 빼고 추석이면 송편을 만들고 들깨로 들기름을 짜고 참깨로 참기름을 짜고 붉은 가을 고추로 고춧가루를 빻는 방앗간이 동네 사람들에게 방앗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다.

동네 방앗간을 그리면서 나는 오래된 것들이 반짝이는 새것들 속에서 주눅 들지 않고 제 역할을 하며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 역할이 꾸준히 이어져 전통이 되고 내일로 향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오래된 마을 그리기는 나에게도 오래도록 이어질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제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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