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종전선언은 불안정한 휴전체제를 해소해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한다. 북한군을 초대하는 게 아니라 평화협정을 초대하는 것이 한국에서 말하는 종전선언이다.
2007년 10월 11일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평화협정으로 바로 들어가기는 좀 빠른 것 같고, 종전선언을 하고 그 다음에 들어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취지로 발언했다. 13일 뒤 백종천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을 이제 시작하자는 정치적·상징적 선언"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에서는 '종전선언을 먼저 하고 그 뒤에 평화협정을 맺자'는 분위기가 강한 데 비해, 미국에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패키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은 이탈리아·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와의 평화협정이 발효된 1947년 9월 16일 이 국가들과의 종전을 선언했다. 또 일본과의 평화협정인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된 1952년 4월 28일 종전을 선언했다.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발효의 시점을 가급적 맞추려고 애썼다.
소련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처럼 운용한 사례가 있다. 1956년 10월 19일 조인되고 12월 12일 비준서가 교환된 소·일 공동선언은 평화협정의 요소들을 담았다. 북방 4개 도서의 귀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평화협정이란 형식을 띨 수 없어 이런 변칙을 사용했다.
이와 달리, 노무현 정부 이래로 한국에서 종전선언을 평화협정 이전 단계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 데는 한국적인 특수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종전선언이라도 먼저 해둬야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절박감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공포심을 일으킨 제2차 북·미 핵위기(북핵위기)는 2003년 8월부터 6자회담 국면으로 전환됐다가 2008년 12월 이후로 6자회담이 흐지부지되면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종전선언 주장은 핵위기로 인한 불안감이 퍼져 있을 때 전쟁을 막자는 취지에서 부각된 것이었다. 종전선언이 북한군의 남침을 부른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이런 배경과 동떨어진다.
그처럼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반영하는 종전선언 추진 움직임을 윤 대통령은 "종전선언 합창"이란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폄하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를 의심케 만드는 발언이다.
평화 헌법으로 불리는 현행 일본 헌법에는 '평화'라는 글자가 5번 나온다. "일본 국민은 항구적 평화를 염원하며"처럼 평화를 언급한 곳이 전문(서문)에 네 군데 있고,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며"라는 구절이 전쟁 금지를 선언한 제9조에 나온다.
평화 헌법이란 수식어가 붙지 않은 우리 헌법에도 '평화'가 9번 나온다. 전문에 4회, 본문에 1회 나오는 일본 헌법과 달리, 우리 헌법에서는 전문에 2회, 본문에 7회 나온다. 우리 헌법의 평화주의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했고, 본문에서는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제4조),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제5조),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제66조 제3항) 등의 선언을 했다.
특히 북한과 관련해서는 여섯 군데에서 평화를 강조했다. 제4조와 제66조 제3항에 이어 제69조에서는 대통령이 취임선서 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서약하도록 했다. 제92조에는 "평화통일정책의 수립"과 더불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언급됐다.
이는 북한과 전쟁하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라는 것이 우리 헌법의 명령임을 보여준다. 이런 헌법적 가치를 경시하고 여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세력이 극우집단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다름 아닌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반대다.
전광훈 발언과 비슷... 윤 대통령의 '위험한' 의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