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정부 출범 1주년인 1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과 보훈부 장관은 한국전쟁의 국제전 성격이 부각되면 전쟁 책임이 모호해진다고 반발했지만, 한국전쟁에 그런 성격이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런 성격이 없었음을 입증하는 편이 훨씬 더 힘들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세계가 미·소 냉전 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전쟁이 오로지 남북한의 군사물자로만 전개된 것도 아니다. 미국·중국·소련의 지원이 컸다. 남북 대결로 축소하기에는, 이를 부정하는 객관적 지표가 너무 압도적이다.
게다가 남한은 공식적으로 이 전쟁의 직접적 당사국도 아니었다. 남한은 휴전협정 당사국에 끼지 못했다. 남한은 작전 지휘권도 갖지 못했다. 전쟁 발발 3주가 채 안 된 1950년 7월 14일, 미군에 그것을 이양했다.
북한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미군의 반격으로 정권을 잃을 뻔했다가 중국군(중공군)의 개입으로 한숨을 돌리게 된 김일성은 1950년 12월 3일 '조선·중국 연합지휘부에 대한 조·중 쌍방 협의문'을 통해 펑더화이(팽덕회)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김일성은 지휘권 이양을 싫어했지만, 소련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이 11월 16일 자 서한에서 "중국 동지가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데 동의한다"라며 펑더화이 편을 듦에 따라 지휘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이 중국뿐 아니라 소련의 지시까지 받는 이런 장면에서도 이 전쟁의 국제전 성격이 드러난다.
윤석열 정권은 현재 북한뿐 아니라 중국·러시아마저 적으로 돌리고 있다. 일본과 손잡고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최일선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런 대외전략 기조를 감안하면, 지금 시점에서 한국전쟁의 국제전 성격이 부각되는 것이 윤석열 정권에 그다지 불리하지 않다. 중·러 압박을 위한 미국의 세계전략에 동참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명분을 한국전쟁에서 끌어낼 여지도 없지 않다.
역대 정권들은 김일성의 남침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면서 북한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런 분위기를 기초로 국가전략을 수립해왔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와도 대결하는 쪽으로 한국을 이끌어가는 윤석열 정권 입장에서는 기존의 접근법이 불리하다. 중·러와의 대결을 합리화할 명분을 역사에서 찾아내는 것이 윤석열 정권 입장에서는 절실하다.
그런데 국민의힘과 박민식 장관이 신속히 나서서 그 여지를 차단하려 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남북 간의 일대일 구도로 부각시키고 이승만 대 김일성 구도로 축소하려는 의중을 드러냈다. 전략적 착오로도 평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이 드러나는 데는 윤석열 정권의 이념적 경직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등은 미·소 세계전략이 투영된 한국전쟁의 세계사적 의의를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기보다는 '악마 김일성'에 대한 적개심을 고조시키는 데 주력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에 대한 적개심도 어느 정도 고조시켰지만, 김일성에 대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전쟁을 국제전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동족상잔으로 축소해서 인식하는 경향을 한국 사회에 만연시켰다. '한국전쟁' 하면 '김일성'부터 혹은 '김일성'만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국전쟁이 국제전으로 조명되는 것이 윤 정권의 대외전략 기조에 결코 불리하지 않는데도, 정권 관계자들이 발끈하며 나서는 것은 한국 보수정권의 이념적 경직성을 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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