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정원을 만드는 승민. "이 일은 정말 재밌어요. 소꿉 장난 하는 것 같아요."
신이현
"몇 년 농사를 지어봤으니 이제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네. 자급자족의 꿈은 아직 유효한 거니?" 농사일을 떠나 승민은 천연발효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우리 밀 발효 빵을 굽는 빵집에서도 일을 했다. "솔직히 완전 농사만 짓는 것은 육체적 한계를 느껴요. 그리고 우리나라 시골에 비닐 쓰레기가 그렇게 많고 묶여있는 개들을 보는 것도 힘들어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부정적인 것밖에 없냐?"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것은 환경, 생태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발효와 미생물 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음식도 그렇고 땅도 그렇고, 자연에 기대어 살려면 미생물은 필수잖아요. 최근에 든 생각인데, 농사를 짓는다면 토종작물과 특정 식물들을 보존하는 밭 정원을 만들고 싶어요. 요즘 생태와 미생물을 주제로 한 모임을 하고 있는데 재미있어요. 이런 걸 자급자족이라고는 할 수 있을까요?" 자급자족을 하겠다고 시작한 농사일이 자기가 더 좋아 하는 일, 더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디테일하게 찾아나가는 과정이 된 것 같다.
"시골에 산다고 모두 농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야. 자기가 잘하는 것을 키워 이웃과 교환을 하면 그것이 자급자족이지. 나도 복숭아랑 고구마 감자 옥수수, 많은 것을 이웃에서 가져와 먹어. 가장 이상적인 것은 동네 안에서 내가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겠지.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어떻게든 이 아이를 시골로 내려와 살게 하고 싶은데, 승민은 여전히 생각중이고 공부중이고 방황중이다.
"이 잡초 좀 꺾어가야겠어요. 이번 달 주제가 잡초 발효거든요. 자라는 곳에 따라 발효에서 나오는 미생물이 달라질 텐데 어떻게 발효될지 궁금해요." 포도나무 아래 잡초를 꺾어 신문지에 잘 말아서 가방에 넣는다. "맨날 공부만 할 거냐. 돈벌이를 해야지." 나의 말에 그녀는 조금 진지해진다. "그러게요. 저도 고민하고 있어요. 나이가 이렇게 되어도 여전히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나는 승민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 걱정하지도 않는다. 손만 대면 무엇이든 아름답게 변신시켜버리는, 내 인생에서 가지고 싶은 마법을 이미 가져버린 미의 여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