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포르차 이탈리아'(Forza Italia, 전진 이탈리아) 당 본부에서 리치아 론줄리 상원의원, 안토니오 타자니 외무장관, 파올로 바렐리 하원 원내총무, 풀비오 마르투시엘로 유럽의회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포르차 이탈리아를 창당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딸 마리나 베를루스코니가 고인이 된 아버지의 정당에 대한 가족의 지지를 재차 강조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런 어수선한 가운데 변화의 흐름을 가장 먼저 직감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였다. 다수의 민영 언론을 소유한 재벌이었던 그는 재빨리 신당을 창당하고 정치권에 뛰어든다. 이러한 동물적 본능이 그에게는 출세가도를 열어줬을지 몰라도 그의 조국 이탈리아에는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그가 읽어낸 변화의 키워드 세 가지 가운데 첫 번째는 영미 신자유주의였다. 이미 1980년대 영국과 미국을 지배했던 신자유주의가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는 세계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게 되는데, 베를루스코니는 이점을 일찍이 감지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범람은 사회문화적으로도 유럽 대륙의 고유문화 퇴색으로 이어졌다.
베를루스코니즘의 두 번째 키워드는 반공주의. 새로울 것은 없었다. 이미 반공 이념은 수십 년 이탈리아 정치 문화 속에서 국민들의 무의식에 하나의 반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소련이 붕괴되면서 더 이상 현실적 지표도 사라져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제1공화국 정당들이 무너진 빈자리에 반공주의의 선점은 베를루스코니의 선명성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됐다.
정치인 베를루스코니를 만드는 마지막 키워드는 정치혐오주의였다. 어떤 의미에서 베를루스코니즘의 가장 핵심적 전략이기도 하다. 제1공화국 정치인들의 타락에서 피로감을 느낀 시민들에게 모든 정치인을 부패한 인물들로 각인시키는 전형적 포퓰리즘 공식이다. 이미 이탈리아에서 1992년 이래 '마니 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 운동 이후 '정치인=악, 관료=선' 공식이 상당히 먹히고 있었다.
모든 정치권을 타락한 집단으로 내몰면서 관료, 기업가 등이 나타나 (또는 그들을 내세워) 일반 국민의 대표를 대체하려는 시도는 프랑스대혁명 직후부터 있었다. 국민들에게 정치 혐오감을 부추겨 외면하게 하고 그 자리를 관료, 기업인으로 메우려는 포퓰리즘을 유럽의 정치학자들은 극중주의라고 부른다.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심각한 도전이기도 하다.
전통 정치집단의 붕괴 후, 제2공화국에 들어선 이탈리아 정치는 이렇게 베를루스코니즘의 깊은 그늘에 여전히 놓여있다. 붕괴한 기존 정치세력의 빈자리에 정치혐오적 포퓰리즘(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이 등장하고 그가 물러난 자리에는 지역이기주의적 포퓰리즘(북부동맹, 오성운동)이 들어서고, 그들이 실패한 자리에 이제는 극우 포퓰리즘(조르자 멜로니)이 채워져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분명 이탈리아 정치의 거목이었다. 제2공화국은 그를 빼놓고 설명할 수가 없다. 이제 그가 떠난 이탈리아는 어떤 방식으로든 새 정치적 토양을 일궈야 한다. 그 거목을 퇴비로 삼을지 아니면 제거할지에 따라 이탈리아의 정치 토양은 달라질 것이다. 이탈리아 정치, 경제, 사회의 미래는 이 과제 앞에 서 있는 시민들의 역량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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