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다 보여 주지는 못한 유성기집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 전시 감상

검토 완료

이준희(songcing)등록 2023.06.17 17:35
지난 5월 26일에 개막해 6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에 다녀왔다. 옛 음반 관련 전시가 흔한 일은 아니기에 진작부터 가 볼 생각이었던 데에다, 주변 지인들의 호평이 제법 있어 더 궁금한 참이었다.
 
가수 김연자 무대의상보다 더 화려해 보이는 한복(?)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공사 현장 가림벽으로 어수선한 광화문 앞을 지나, 경복궁 서쪽 담을 따라 청와대 쪽으로 조금 더 가다 보면 전시장이 나온다. 10년 전 제법 풍성한 구설 속에 들어섰던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옥이다.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 전시 안내 전단 ⓒ 이준희

   
아름지기와 국립국악원이 함께 마련한 전시의 주제는 1907년부터 1964년쯤까지 제작되었던(한국 기준) 유성기음반이다. 1958년에 LP음반 국내 제조가 가능하게 되기 전까지 반세기 가량 사실상 유일한 소리 기록 매체였던 유성기음반은, 단순한 골동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우리 문화의 가치와 미감을 전하는' 아름지기의 취지에도 손색이 없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전시 내용이나 형식은 깔끔하고 담백한 편이다. 그저 많이만 보여주면 좋은 줄 알고 두서도 없이 번잡하게 깔아 놓는 전시와는 분명 격이 달라 보였다. 공동 주최자인 국립국악원 외에 유성기음반 전문가들의 상당한 협조가 있었기에 그런 전시 수준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유성기음반 관련 자료를 다양하게 볼 수 있고, 유성기음반에 담긴 그 옛날 음악을 들어 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해설 내용에 소소한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심자들이 유성기음반을 만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전시품 가운데 일부가 모조인 것에 대해 분명한 안내가 없었던 점은 지적할 만한 문제이다. 2015~16년 당시 5천만 원이 넘는 경매 기록을 세우며 화제가 되었던 윤심덕 <사의 찬미> 음반이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턴테이블 위에 그냥 얹혀 있는 건 당연히 모조품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모조품이 전시에 나올 수도 있기는 하나, 그에 대한 안내가 없다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전시된 모조 유성기음반. 왼쪽이 <사의 찬미> 모조품 ⓒ 이준희

   
앞서 보았듯 유성기음반은 1964년쯤까지 계속 만들어졌는데, 해방 이후 20년 동안 유성기음반에 대해서는 전시 중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도 다소 아쉬웠다. 해방 이전과 달리 이후에는 유성기음반 주도 장르가 대중음악으로 완전히 굳어졌고, 국립국악원이 참여하는 전시이다 보니 그 시기를 아무래도 저평가하는 입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동의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1층부터 3층까지 마련된 전시를 다 둘러본 뒤, 전시장 안내 직원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뜻깊은 기획이고 괜찮은 전시인데, 혹 후속으로 대중음악 유성기음반으로 전시 주제를 잡아 보면 어떻겠냐고. 살짝 난감한 표정을 비친 직원은 아마 어려울 것이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예상했던 답이었다.
 
개인 취향에 따라 음악에 선호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기에 우열이나 선악의 구분을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는 문화권력이 규정하는 음악의 위계, 서열이 분명 존재한다. 거칠게 보자면 최상위에 이른바 '클래식'이 있고, 다음에 '국악'이 있고, 그 아래에 대중음악이 있다.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 전시 주최 측에서 그러한 현실의 틀을 깰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 완벽한 전시야 있을까마는, 흔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아니기에 어쨌든 아쉬움이 크다. 유성기음반에 담긴 전설적인 전통음악 명인들의 소리는 보고 들었지만, 그 자리에 전설적인 대중음악 명인들의 소리는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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