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

자녀 살해 후 자살 대응 국제심포지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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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nasso0202)등록 2023.06.01 12:00
 '우리가 사회적 부모이다, 우리가 아들을 잃었다'​

아이들에게 출생의 자유가 없다고 죽음마저 그러하다 말할 수 없다. 행복이 담보되지 않은 삶이라도, 불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인생이더라도, 이들의 미래와 생명은 그 누구도 좌우할 수 없다.

                                        [울산지방법원 2020. 5. 29. 선고 2019고합142 판결]


'신은 죽었다'는 말이 이보다 와닿을 수는 없다. 아무것도 모른채 해맑게 집으로 향하던 아이가 다음날 부모의 손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소식을 들으면 적어도 그렇다.

자녀를 살해한 부모가 목숨을 끊는 비극이 잇달아 들려온다. 지난달 3일 노원구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생후 수개월인 자녀와 함께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4일 밤에는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 중국인 남성이 7살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론 일각에서는 이를 동반자살이라고 보도한다.

이제 우리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이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동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의사가 없는 아이를 죽이고 부모가 자살하는 것을 동반자살이라고 명칭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사건들에 우리는 동반자살이 아닌 '자녀 살해 후 자살' 이라는 단어로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반복되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대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국가가 일정한 책임의식을 져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누구라도 생명을 박탈할 권한은 없다
4월 12일 국회의사당에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대한 <'개인의 비극' 너머 대안을 묻다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반복되는 원인, 국내외 사례 분석, 국가적 대응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들의 논의가 이루어졌다.

보건복지부에 통계에 따르면, 자녀 살해 후 자살 사례는 2018년 7건, 2019년 9건, 2020년 12건, 2021년 14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건, 경찰청에서 임의로 취합한 사례를 더한 것일 뿐 실제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청된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 살해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가 없어 아직도 자녀 살해 후 자살로 목숨을 잃는 아동의 정확한 현황을 파악할 수 없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교수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대해 "부모라도 자식의 생명을 결정할 권한은 없다"고 말한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내가 없으면 자녀가 잘 살지 못할거라는 왜곡된 이타주의이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한국 사회가 산업화 과정을 거치고 핵가족화 되며 발생한 문제중에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살 시그널을 조기에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국가가 이러한 비극을 개인의 문제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해외에서도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한국보다 훨씬 이전부터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호주 모나시대학교의 테아브라운 교수는 국제적 관점에서 '자녀 살해 후 자살' 동향을 분석했다. 국제적으로도 '자녀 살해 후 자살' 연구는 드물고, 진행된다 하더라고 소규모로 이뤄지고 있었다. 연구가 단편적이라는 한계도 존재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지만 모두 똑같은 형태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기존 사건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요주의 상황(레드 플레그) 경고 지표를 만들수 있었다. 호주의 경우 사회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을 때 자녀 살해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족 내부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거시적인 시점으로 예방을 위한 조기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 예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강력범죄 수사과 임인수 계장은 사전 대응을 하고 싶어도 사후 처리 밖에 할 수 없는 경찰의 한계를 지적했다. "사건 현장에서는 타살 혐의 여부를 찾는데 집중한다. 피의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이유나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경찰의 역할은 사고 이후 현장 조사에 불과하다.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모 본인이 자살을 선택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근본적이다. 그 이후에는 '내가 없어도 자녀 혼자 잘 살 수 있다' 라는 사회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경찰도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일정한 책임을 느끼고 보건복지부와 자료를 공유할 것이라 밝혔다. 국가와 사회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건이 일어난 경위, 타살의 혐의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언어적, 행동적, 상황적 신호를 파악하고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다.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예정된 죽음을 막아야 한다
일본의 경우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 않는 문화이다. 일본 아동학대방지연구센터 가와사키 후미히코 센터장은 '죽은 자에게 채찍질 하지 않는다'는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명백히 아동의 생존권, 발달권, 참여권 등의 권리를 박탈하는 심각한 아동학대이다. 후미히코 센터장도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아동학대의 극단적인 형태로 바라보았다. 부모일지라도 자녀의 생명을 침해할 권리는 절대적으로 없다는 것이다.

국민일보 김유나 기자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취재하며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집으로 들어가는 CCTV 속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 아팠던 경험을 토로했다. "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해 줄 거라고 믿었던 보호자가 자신을 살해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모든 부모들이 어려운 상황에 닥친다고 해서 똑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며 위기 과정을 감지하고 알릴 게이트 키퍼를 적극 육성하고, 기존에 벌어졌던 자녀 살해 후 자살 사례에 대해서도 '심리 복원'을 통해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 취약계층인 발달장애인 가정의 경우 자녀 살해 후 자살 위험에 더욱 노출되어 있지만, 발달장애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진철 사무처장은 "발달장애인 부모들 중 공공연하게 죽음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한국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로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언급했다.

실제로 발달장애 부모 5300명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한적이 있냐?'는 질문에 약 60%의 부모가 '죽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꾸준히 국가적 도움을 요청했으나 작년에서야 국회에서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촉구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는 국가 차원의 지원 부재를 보여준다. 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의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조기 지원, 그리고 공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대응과 문성혁 사무관은 평소 정상적이던 가정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을 때 사회 외부에서는 시그널을 발견하기 힘들어 개입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에 자살예방정책과 이두리 과장은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강조한다. 개인이 어려움을 겪을 때, 상담이나 센터 방문을 통해 극단적인 생각을 완충하할 수 있어야 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타살 여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자에 대한 '심리 부검'도 실시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사례를 확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삶은 예단할 수 없다. 오늘 죽음을 결심한 사람이 마음을 바꾸어 내일의 삶을 선택할 수도, 반대로 살겠다 마음먹은 사람이 다음날 죽음을 결심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회는 더욱 촘촘하고 세밀한 그물망으로 구성원을 보호해야 한다. 특히 한 아이의 미래가 전멸하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더욱 그렇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다룰때 가해자인 부모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아이의 입장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재해'였을까.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을 결심한 부모들에게 마지막으로 묻고싶다. 당신의 아이는 정말 죽음을 선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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