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피해자 유족에게 수령액 20%를 요구했다는 24일 자 <조선일보> 보도
조선일보
여당도 비판을 쏟아냈다. 전주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겉으로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한 맺힌 사연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사리사욕을 챙긴 것"이라고 논평했다. 25일 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수영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은 시민모임을 '반일 브로커'로 폄하하며 "이들은 한일관계가 개선되면 자신들의 밥벌이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24일 페이스북 글에서 "시민단체가 강제징용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가 지원을 구실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눈물 나는 고통의 대가를 먹고 살겠다고 나서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라고 한 뒤 "소송 지원과 약정금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라며 "그렇다면 변호사법을 위반한 약정이어서 무효일 가능성도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언론에 보도된 실제 약정서의 사본에는 당사자 셋이 등장한다. 양금덕 할머니가 포함된 5인의 피해자(위임인), 변호인으로 구성된 소송대리인(수임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전신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다. 이 3자는 약정서 제1항에서 이렇게 합의했다.
위임인들은 위 사건과 관련하여 손해배상금·위자료·합의금 등 그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로부터 실제로 지급받은 돈 중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제피해자 인권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게 교부한다.
제1항에 따르면, 전범기업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에 의해 받은 것도 20%에 포함된다. 이 조항은 20%의 사용 용도를 공익적 목적으로 제한했다.
이와 관련해 제3항은 "위임인들로부터 지급받은 돈을 위 1항에서 정한 대로 사용하여야 하고, 위임인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매년 1회 그 구체적인 사용 내역을 위임인들에게 통지하여야 한다"라는 의무를 시민모임에 부여했다.
<조선일보>는 약정서 내용을 소개할 때 "이 사건과 관련해 손해배상금·위자료·합의금 등 그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일본 기업)로부터 실제 지급받은 돈 중 20%를 모임에 교부한다"라는 조항이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지급받은 돈 중 20%"라는 구절과 "모임에 교부한다"라는 구절 사이에 공익적 용도 제한에 관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생략했던 것이다. 직접 인용을 하는 듯이 하면서 내용 일부를 뺐으니, 악의성이 있는 보도라고 할 수 있다.
최재형 의원은 "약정서에 따르면 약정금은 일제 피해자 인권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대부분 시민단체의 운영비로 사용될 것입니다"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확단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약정서만 갖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20%가 시민모임에 사적으로 지급되는 돈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당사자들이 위와 같은 합의를 한 것 자체를 법적·도덕적으로 나무라기는 쉽지 않다. 승소한 판결금의 일부를 역사문제 해결에 사용하기로 한 것을 나쁜 일이라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피해자와 소송대리인단·지원단체 갈라치기
<조선일보> 보도가 나온 뒤, 시민모임은 피해자뿐 아니라 소송대리인단과 지원단체도 소송을 위해 희생을 감수했다는 점을 24일 자 보도자료에서 언급했다. "2012년 10월 소송을 시작할 무렵, 소송대리인단(대표 이상갑)은 공익 소송을 위한 재능 기부를 하고,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전신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표 김희용)은 시민단체로서 제반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원고(근로정신대 피해자들)들은 법정에 나서서 역사적 증언을 해주시기로 의기 투합하여 소송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송에서 이길지 질지 또 소송 기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소송에 승소하여 경제적인 이득이 생기면 원고들은 그중 20%를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 역사 계승 활동을 위한 공익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에 합의했습니다"라며 "소송의 시작이 그러했듯, 소송의 마무리도 공익적이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식민지배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은 사실은 정부 몫이다. 정부가 이를 방치했기 때문에 시민단체와 변호사들이 10여 년간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 진행된 이 같은 희생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그리고 시민단체가 20%를 받게 된다면 그 20%가 공익 목적으로 쓰이는가를 감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아직 20%가 지급되지도 않았고 사적 용도로 쓰이지도 않은 상태에서 '반일 브로커'를 운운하며 비판부터 가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보도자료에서 시민모임은 "원고의 유지를 유족들이 따를 것인지의 여부는 유족들이 결정하실 일입니다"라고 명시했다. 20% 지급에 대한 약속 이행을 유족들의 뜻에 맡기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사안이 크게 보도됐기 때문에 이런 입장을 표명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시민모임이 금전 자체에 크게 집착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24일 하루 동안 일어난 위와 같은 일들은 식민지배 문제 해결과 관련해 다행과 우려를 동시에 품게 만든다. 외교부가 양금덕 할머니에 대한 서훈에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밝힌 것은 다행이다. 함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서훈 재개 자체는 바람직하다. 동시에, 외교부 관계자의 발언이 인용된 <조선일보> 보도가 피해자와 소송대리인단·지원단체를 갈라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양금덕 할머니 같은 피해자들이 법정투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피해자 본인들의 의지와 더불어 국민적 응원이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소송대리인단과 지원단체의 희생 역시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피해자 측과 소송대리인단·지원단체의 사이가 소원해지면 이 문제의 투쟁 역량이 그만큼 약해지기 쉽다는 점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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