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서더크에 있는 조지 인 펍(George Inn Pub)
윤한샘
펍은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한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였다. 그곳에 가면 친구와 동료, 이웃이 있었다. 맥주와 음식을 먹으며 일상을 공유했고 사회의 부조리를 논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정치적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단순히 술을 마시는 곳이 아니라 중요한 커뮤니티 역할을 했기에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 줄여서 펍(pub)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이다.
17세기 엘리자베스 시대에 시작된 펍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절정을 맞는다. 이때부터 상류층들도 펍을 찾았다. 내부에는 계급별로 들어갈 수 있는 방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귀족과 자본가는 살롱(salon)과 팔러(parlour)라는 방에서 술을 즐겼다. 시간이 지나며 상류층들은 고급 살롱과 클럽처럼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맥주도 구분했다. 노동자들이 다크 에일 포터(porter)를 좋아했다면 상류층은 알코올이 높고 진한 로버스트 포터(robust porter)나 색이 밝은 페일 에일을 선호했다.
프랑스에서는 혁명으로 봉건제가 철폐되자 상류 계급도 밖에서 술과 음식을 즐겼다. 맥주에 집중된 영국과 달리 다양한 술을 파는 곳이 많았다. 비스트로, 카바레, 바 외에 카페에서도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초기 카페는 상류층을 대상으로 커피를 팔던 곳이었으나 점차 대중화되며 맥주와 와인도 판매했다.
에두와르 마네의 1878년 작 '카페에서'는 상류 계급으로 보이는 남녀가 황금색 맥주를 즐기는 모습을, 1882년 유작 '폴리베르제르의 바'에서는 유명한 영국 맥주 '바스'뿐만 아니라 샴페인, 와인, 리큐르 등을 판매하는 고급 바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일상 속 여행지가 된 펍
과거 '호프집'으로 불리던 대한민국의 맥줏집은 최근 펍이나 탭룸(tap room)으로 변화되고 있다. 호프집은 대중 맥주를 값싼 안주와 먹던 곳이었다면 펍과 탭룸은 다양한 맥주와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맥주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와 최적의 서빙을 위한 장비가 존재한다. 적절한 맥주의 탄산과 온도를 위한 냉장고와 전용 글라스도 구비하고 있다. 음식도 맥주에 맞춰 구성된다. 겉으로 봤을 때는 외국 펍과 다를 바 없지만 한국 펍은 지향점이 사뭇 다르다. 우리에게 펍은 어떤 의미로 변하고 있을까?
영국 펍이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공간이라면 한국 펍은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지와 같다. 펍에 간다는 건 익숙지 않음을 경험하려는 것이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책이나 영화를 볼 수 있다.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멍을 때려도 된다.
좋은 맥주와 음식은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최근 펍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맥주를 마시는 것에서 벗어나 문화와 자유를 즐긴다. 펍은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는 공간이 되고 있다. 좋은 술 문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