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남소연
작년부터 박 후보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승만 띄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 22일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도 그랬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이승만 대통령, 백선엽 장군, 김원봉 애국지사 세 분은 독립유공자 또는 우리나라를 구한 참전 군인으로서 국가보훈부에서 생각할 때 예우를 받아야 될 대상입니까 아닙니까?"라고 질의하자, 그는 "김?" 하면서 "마지막은?" 하고 되물었다.
김희곤 의원이 "김원봉"이라고 일러주자, 고개를 갸우뚱한 뒤 "이승만은 건국 1등급을 받은 상태고, 백선엽 장군은 6·25 때 대한민국을 지킨, 구한 장군이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되고, 김원봉은 여러 가지로 그런 활동을 했습니다만 북한 정권과 너무 직결되기 때문에 상당히 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이 장면에서 박 후보자는 '이승만에 대한 예우와 김원봉에 대한 예우는 달라야 한다'는 메시지를 행동과 언어를 통해 보여줬다.
그런데 이 질의응답은 박민식 후보자와 그의 참모진이 이승만 재평가에 필요한 논리적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김원봉은 부족하다'는 박 후보자의 답변 뒤에 김희곤 의원은 질문 취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김 의원이 이승만·백선엽·김원봉에 관한 질문을 한 것은 이 3인이 공과 논쟁에 휘말려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승만은 정부수립에 기여했지만 권위주의 독재를 하다가 쫓겨났고, 백선엽은 한국전쟁에서 역할을 했지만 그 이전에 친일을 했고, 김원봉은 무장 독립투쟁을 했지만 월북을 했다. 이로 인한 논란에 대해 보훈부 장관으로서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게 김희곤 의원의 질문 취지였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이승만은 건국 1등급 훈장을 받은 상태고"라는 말로 답변하고 넘어갔다. 1949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에게 1등급 건국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셀프 수여'한 일을 언급하면서, 훈장이 이미 수여됐으니 이승만 예우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박민식 후보자는 지난 3월 26일 이승만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만든 토대 위에 이뤄졌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석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1960년 4·19 혁명에 의해 국민적 단죄를 받은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초석으로 높이려면, 무엇보다 4·19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이승만은 4·19에 책임이 없다든가, 4·19 자체가 잘못됐다든가 등을 입증하지 못하면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초석으로 높이기 어렵다. 그런데 박 후보자는 '이미 훈장을 받았으므로 예우에 문제가 없다'는 부실한 답변을 내놓는 데 그쳤다.
이는 박 후보자와 참모진이 이승만 띄우기에 열의만 보일 뿐, 그것에 필요한 이론적 준비는 돼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승만기념관 건립의 최대 관건이 국민 여론의 향방이고 국민 여론을 바꾸려면 이론적 무장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업에 대한 보훈처의 준비 상태는 매우 부실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가로도 대통령으로도 부적격
박민식 후보자는 김원봉은 문제가 있어도 이승만은 문제가 없다고 발언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문제가 있는 쪽은 이승만이다. 이승만은 장기독재, 선거부정, 친일청산 방해,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이런 죄과는 민주공화국 이념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며 여러 세력이 함께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이념을 무시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현행 헌법 제1조처럼 1948년 헌법(제헌헌법) 제1조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했다. 민주공화국 헌정질서를 파괴했으므로, 이승만의 죄과는 헌법 위반 행위가 된다. 그를 몰아낸 4·19혁명이 헌법 전문에까지 수록된 것은 4·19가 헌법 위반에 대한 응징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승만의 죄과가 김원봉의 월북 및 북한 정권 참여보다 무거우면 무거웠지 가볍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희망대로 대한민국이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려면 헌법 전문에 있는 4·19 이념부터 삭제해야 한다. 이승만 재평가는 그 정도로 엄청난 일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추진하는 공직자가 이승만 재평가의 당위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훈장 셀프 수여 정도만 거론했다. 박 후보자가 사안을 가벼이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느낌은 강병원 민주당 의원과의 질의응답 때도 나타났다. 강병원 의원은 올해 1월에 보훈처가 기획재정부에 460억 원짜리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계획서를 제출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지난 4월에 보훈처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아닌 국가유공자법을 기념관 건립의 법적 근거로 제시한 이유에 관해 질문했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을 위해 기념관을 짓겠다면서 전직 대통령 예우법을 근거로 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의였다.
전직 대통령 자격이 아닌 독립운동 국가유공자 자격에 근거해 건립하겠다는 것은 이승만의 대통령 지위를 내세우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재임 중에 4·19 혁명을 초래한 이승만을 위해 국립 기념관을 짓겠다고 하면 국민 여론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에서 국가유공자로 자격을 바꾸려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강병원 의원의 집요한 질문에 대해 박 후보자는 다소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일 인물인데", "독립운동가이면서 대통령을 하셨기 때문에", "저희들은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은 좀더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뭘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원님께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등등의 발언을 띄엄띄엄 했다.
그런 뒤 맨 마지막에 가서 "이승만이라는 한 사람이 대통령이면서 독립지사를 겸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건국지사 그 부분을 적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건국 지사'라는 생경한 표현까지 써가며, 이승만은 두 가지를 다 겸했으므로 어느 한쪽을 근거로 해서도 기념관을 세울 수 있다는 인식을 표시한 것이다.
그의 답변을 종합하면, 동일 인물인 이승만은 독립운동가 출신이자 대통령이었고 두 지위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법에 의거해 기념관을 세울 수도 있고 국가유공자예우법에 의거해 기념관을 세울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4·19로 인해 이승만의 대통령 지위에 흠결이 발생했다는 점을 박 후보자도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승만과 분리될 수 없는 또 다른 지위'를 운운하면서 대통령이 아닌 독립운동가 자격을 기념관 건립의 근거로 내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승만은 1925년 3월 23일 독립운동을 방해했다는 죄목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직을 빼앗겼다. 1960년에는 재판이 없었지만, 1925년에는 탄핵 재판이 있었다. 역량의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총본부였다. 그런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방해죄로 이승만을 탄핵했다.
이는 이승만의 독립운동가 지위에도 흠결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부분에 대한 보훈부 장관 후보자의 인식이 불철저하다는 점이 청문회에서 드러났다. 독립운동가 자격을 심사하는 국가기관의 수장이 독립운동 방해죄를 가벼이 보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보훈부 장관 후보자의 얕은 인식
박민식 후보자가 이승만 띄우기를 요란하게 추진하면서도 이론적 기반이 취약한 이유가 있다. 그의 자신감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독립운동가로서 탄핵당한 부분과 대통령으로서 하야한 부분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그는 스스로 '이승만에 대해 깨달았다'고 공언한다. 지난 18일 자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독재자니 분단의 원흉이니 친일파니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자랐다. 그런 인식을 바꾼 지가 2~3년이 채 안 된다. 특히 보훈처장이 되고 나서 많은 자료를 보고 학자들과 토론도 하면서 내가 이승만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승만이 국회 반민특위를 공격해 친일청산을 훼방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친일파로 부르기는 어렵다. 친일청산 방해도 친일 못지않은 중죄이지만, 흔히 말하는 친일과는 개념상의 거리가 있다. 박 후보자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이승만을 친일파로 생각했다. 이승만과 친일청산 문제에 대한 인식이 깊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승만의 약점에 대한 대응 논리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렇게 말한다. 깨닫지 못했으면서도 스스로 '깨달았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의 인식 수준이 깊지 않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 보훈부 장관 후보자가 이승만 재평가를 적극 추진하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승만은 내려오라'고 요구했다. 임시정부도 그랬다. 이런 국민들을 상대로 합당한 이유도 없이 이승만 띄우기를 시도하는 것은 국민들의 역사인식과 감정을 무시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