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산 장인이 만든 마늘 캐는 데 쓰는 도구. 길쭉한 두 개의 발이 마늘 뿌리를 다치지 않고 쉽게 캘 수 있도록 고안했다. 2023년 5월 17일.
정진오
농기구 중에 낫을 빼놓을 수는 없다. 벼나 보리 같은 곡식이 익으면 제때 베야 한다. 너무 늦게 베면 낟알이 땅에 떨어져 수확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때 꼭 필요한 게 잘 드는 낫이다. 낫이 잘 들지 않으면 베는 사람이 몇 배나 더 힘이 든다. 손에 힘을 많이 쓰면, 낫을 쥔 손이나 벼 포기를 잡았던 손이 퉁퉁 부어오를 만큼 아프게 된다. 다음날 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풀을 베거나 나뭇가지를 자를 때도 낫이 있어야 한다.
낫도 종류가 많다. 국립국어원에서 낸 민족생활어 자료 총서 네 번째 『금산 사람들의 생활어·대장장이·무속인·단청장』을 보면, 낫의 종류만 12가지다. 왼낫, 조선낫, 외낫, 왜낫, 심지낫, 을목낫, 오목낫, 황새목낫, 복합낫, 얇은낫, 당몽태낫, 수온낫 등이다.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조선의 재래농구』에서는 평낫, 우멍낫, 버들낫, 반달낫, 톱낫, 벌낫, 밀낫 등 7가지가 있다고 했다. 주로 벼를 베는 데 쓰던 걸 '벌낫'이라고 했고, 나뭇가지를 치는 데 쓰는 것을 '밀낫'이라고 했다고 한다.
낫이나 호미, 쇠스랑 같은 농기구는 무기가 되기도 했다. 동학혁명 때 농민군은 별다른 무기가 없다 보니 자신들이 농사지을 때 쓰던 농기구를 손에 들었다. 시인 신동엽은 농민군들의 그 모습을 작품에 옮겼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란 시구가 유명한 그의 장편 서사시 <금강>에는 낫, 삽, 호미, 쇠스랑, 괭이 같은 무기가 된 농기구들이 여럿 등장한다.
옛날에,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에도 그렇지만 풍년이냐 흉년이냐는 문제는 천재지변에 달렸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가뭄이 오래 들어서도 안 되고, 장마가 오래 지속되어서도 안 된다.
그래선지, 날씨와 농기구가 연결된 우리말도 많다. '호미모'는 물기가 적은 논 같은 데서 호미로 파서 심는 모를 일컫는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마른 논을 호미나 꼬챙이로 파서 심는 '강모'가 있고, 논에 물이 부족하여 꼬챙이로 논바닥에 구멍을 뚫으면서 심는 '꼬창모'가 있다.
비가 온 양을 나타낼 때 호미나 보습에 빗대어 쓰는 말도 있다. '호미자락'은 빗물이 땅에 스며든 깊이가 얕아 호미의 끝이 겨우 들어갈 만큼 조금 내린 비를 말한다. '보지락'은 보습이 들어갈 만큼 빗물이 땅에 스몄다는 말이다. '단비가 한 보지락 시원하게 내렸다'처럼 쓴다.
대장장이가 시인의 시(詩) 선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