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서민정 아시아태평양국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집에 찾아가 남겨둔 쪽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공개한 쪽지에는 "양금덕 할머님께. 최근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되는 마음에 자택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조속히 쾌차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리며, 허락해주신다면 조만간 다시 찾아뵙고 직접 궁금하신 점들을 설명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 서민정 올림"이라고 적혀 있다.
윤 정부의 제3자 변제(대위변제) 방침을 거부한 피해자들은 "궁금하신 점들"이 없다. 이들은 일본의 사과나 배상을 관철시킴으로써 평생의 한을 푸는 동시에,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기여함으로써 국민들의 격려에 부응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궁금한 게 있는 쪽은 기시다 내각과 윤석열 정부다. 기시다 총리가 이행 상황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보도에서도 나타나듯, 궁금한 쪽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이들은 어떤 조건을 제시해야 피해자나 유족들이 포기할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만한 쪽이다. "조만간 다시 찾아뵙고 직접 궁금하신 점들을 설명 올리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쪽지는 기시다·윤석열 측의 입장을 설명하겠다는 뜻과 다름없다.
쪽지를 남긴 서민정 국장은 지난 1월 12일 강제징용(강제동원) 공개토론회 때 일본의 역대 사과담화를 이상한 방식으로 강조한 일이 있다. "그간 일본 내각이 여러 차례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음에도 여러 번 반복되면서 우리 국민들이 이를 신뢰하고 진정한 화해에 이르지 못하는 점 등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사죄와 반성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우리 국민들이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가 전달하고자 한 진짜 메시지는 '일본의 사죄와 반성이 여러 번 반복'됐다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사과를 많이 했다는 것을 강조하면 국민들이 반발할 게 확실하므로, 그처럼 이상한 방식으로 일본의 사과를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토론 시간에도 이상한 말을 했다. 강제징용 문제 해결이 오랫동안 지연된 사실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정부가 계속해서 끌 수 있습니다"라며 "이번 정부도 대충 협상한다고 하면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뒤 지금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용기 내서 지금 하고 있고"라며 현 정부를 두둔했다. 현 정부도 역대 정부들처럼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도 성의를 다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문제는 윤 정부는 일본 쪽에 유리하게 매듭짓고자 용기 내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 정부를 두둔하는 서 국장의 발언은 사전에 준비된 원고를 읽는 발표 시간이 아니라 즉석 답변이 나오기 쉬운 토론 시간에 튀어나왔다. 이런 외교부 국장이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나 유족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어렵지 않게 추론된다. 일본 외무성 한국 출장소가 되다시피한 한국 외교부의 서글픈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압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