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노년층의 신체적, 정신적, 인지적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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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호주 공영방송인 에이비시(ABC)는 할아버지를 잃은 한 손녀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할아버지를 "온화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하는 그녀는 가족 모두가 할아버지를 사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원 가꾸기를 즐기고 늘 웃던 할아버지는 84세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그가 수년에 걸쳐 삶을 정리할 준비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누구도 할아버지의 계획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그녀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더 이상 특이한 것이 아니다. 호주 통계청(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ABS)에 따르면 85세 이상 남성의 자살률은 전 연령대 평균의 세 배에 달한다. 이 연령대 인구는 전체 인구의 3.1%에 불과하지만 자살률은 10만 명당 36명으로 전체 평균인 10만 명당 12명보다 월등히 높았다. 80~84세 남성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 그룹이기도 했다.
모내시 대학에서 노인 문제를 연구하는 카일리 킹 터너 정신건강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나이 든 남성들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그들이 자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녀는 그들에게는 어떻게 느끼는지 표현할 언어가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자살의 위험을 깨닫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신 건강 문제 해결을 돕는 민간 단체인 비욘드 블루(Beyond Blue)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호주 남성의 10%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 우울증의 원인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만성 질환, 은퇴 등이었다. 건강, 재정적 스트레스로 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 외로움
특히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호주의 노인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정신 건강 문제로 꼽혔다. 많은 노년층 남성들이 지역사회와 단절된 느낌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고,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코로나19는 노인들의 정신 건강 문제에 또 다른 충격을 안겼다. 호주 고령화위원회가 실시한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의 정신 건강과 웰빙, 75세 이상 호주인의 생생한 경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나이 든 여성이 나이 든 남성보다 팬데믹 기간 정신 건강이 악화하였거나 처음으로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했을 확률이 높았다. 나이 든 남성들은 봉쇄 기간에 일상이 변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설문 결과는 나이 든 남성들이 일상적으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호주 사회복지부에 따르면 호주 노인 3명 중 1명은 혼자 살고 있고, 5명 중 1명은 거의 매일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5세 이상의 노인들이 고립감과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호주 통계청의 설문조사에서는 2020년 초 코로나19로 첫 번째 봉쇄 조처가 내려졌을 때 노인들에게 외로움이 가장 큰 개인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혔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시드니 대학 노인학과 커를 교수는 사회적 고립(관찰이 가능할 정도로 신체적으로 혼자 있고 사회적 연결이 부족한 상태)과 혼자라는 주관적인 느낌인 외로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