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치료제와 백신 개발과 생산을 위해 민간 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다.
셔터스톡
전 국민 건강보험이 있는 한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나을까. 한국 정부가 수입한 개별 백신의 단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21년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7900만 명분의 코로나19 해외 백신 도입 비용은 3조 8067억 원으로 평균 단가는 4만 8000원 정도다. 미국 정부가 모더나와 계약한 가격보다는 비싼 셈이다. 정부가 백신을 직접 구매해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점은 미국과 동일하다.
정부의 코로나19 예방접종 지원이 중단된다고 가정해 보자. 지난 3월 29일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19 엔데믹 로드맵에 따르면, 올해는 전 국민 무료접종을 유지하지만 엔데믹 전환 이후에는 계절 독감과 마찬가지로 필수접종 대상자만 무료로 접종할 수 있다. 한국의 건강보험이나 민간보험 모두 감염병 예방을 위한 백신 접종을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은 전액 자부담해야 한다. 정부의 가격 규제 역시 작동하지 않는다.
그간 무료로 접종했던 코로나19 백신 추가접종에 앞으로는 회당 16만 원(혹은 그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면, 과연 누가 주저 없이 접종할 수 있을까? 사회경제적 불평등 역시 불을 보듯 뻔하다.
모더나의 백신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언론은 수입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미국 언론과는 확실히 다른 관점을 보여줬다.
아무래도 희망 사항 같아 보이지만,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가격 인상이 후발 주자인 SK바이오 백신의 부진한 판매 실적을 상쇄할 기회라는 분석이나, 정부가 화이자나 모더나 대신 SK바이오 백신을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SK바이오 백신이 시판된 지 갓 반년이 지났을 뿐 아니라 여전히 여러 국내 기업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상황에서 정부가 무상접종을 중단할 가능성은 낮다고 점치기도 했다. 마치 국내 제약기업의 성공이 곧 한국 사회 전체의 성공이라는 식이다.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치료제와 백신 개발과 생산을 위해 민간 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다. 결과는? 우리는 정부가 선구매까지 해준 SK바이오 백신의 가격이 얼마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셀트리온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지원한 질병관리청은 셀트리온과 공동으로 특허권을 갖게 됐지만, 치료제 가격 결정 기전을 투명하게 공개하지도 않고, 후발 생산자들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특허권을 공유하지도 않았다.
최근 검찰이 문재인 정부 당시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 기업에 대한 지원 과정에서 부당행위가 있었는지 조사에 나섰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도 보건 안보, 글로벌 바이오헬스 중심 국가라는 목표하에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들은 대동소이하게 유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주창한 백신 주권, K-글로벌 백신 허브라는 정책 목표의 연장선이다.
백신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건 제약기업이고,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역할에만 머물면 된다고 하는 관념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제약기업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적인 지원은 코로나19라는 감염병 팬데믹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놀랍게도 현실에서 정부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초연구는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임상시험은 비용이 많이 드니까, 생산시설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해서 등등... 심지어는 개발조차도 민관협력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로 정부는 민간 기업을 지원해 왔다. 그 수단도 재정 지원을 넘어 세제·금융 혜택, 규제 완화, 심지어 민간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생산시설까지 만들어 빌려준다.
모든 권력이 제약산업 수중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