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 녹산로의 봄날 풍경오임종 전 4.3유족회장이 가시리 청년회장과 이장을 할 때 마을사람들과 함께 벚나무를 심고 유채꽃을 파종해 오늘날 멋진 풍경의 기초를 닦았다.
황의봉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의 녹산로는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힌다. 봄이면 벚꽃과 유채꽃이 동시에 만발해 10여㎞에 달하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가 펼쳐진다. 대한민국 100대 아름다운 길로도 선정돼 육지 관광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최고의 봄날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아름다운 가시리 마을에도 1948년 4·3의 광풍이 불어닥쳤고, 인구의 절반가량이 희생돼 제주도에서도 대표적인 비극의 현장이 됐다.
동네 집집마다 같은 날 제사
1959년 가시리에서 태어난 오임종 어린이는 10살이 될 무렵,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력 11월 21일이면 하루에 네 분의 제사를 지냈다.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작은할아버지. 그뿐만 아니라 동네 집집마다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이상하네.'
오임종 어린이가 자라면서 조금씩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4·3이라는, 상상도 못 했던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자신의 집안뿐 아니라 가시리 마을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살아남은 마을 어른들로부터 "너희 할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좋은 분"이라는 말을 들으며 청년 오임종은 결심했다.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죽었어도 모두들 쉬쉬하고, 위령탑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는가. 나라도 나서야 할 일이 아닌가.'
오임종은 가시리 청년회장이 됐고, 4·3유족 청년회 창립(초대 회장이 현 오영훈 제주지사)에 동참해 운영위원을 한 데 이어 4·3유족회 표선면 지회장을 맡았다. 2021.2.1.∼2023.1.31에는 제주4·3 유족회장으로 10만 유족을 대표해서 4·3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