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과 피주의 북한군-중국군 묘역
봉주영
북한군 중국군 묘역은 네이버지도에는 없고 카카오지도에서는 검색이 된다. 구글지도에는 '적군묘지'라고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의 사적지가 우리나라의 일부 지도에서 검색되지 않는 것은 좀 아쉽다.
이 두 곳의 한국전쟁의 흔적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나도 한국전쟁 관련해서는 안보관광이라고 하는 땅굴이나 판문점,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일 년 동안 휴전선 일대에서 한국전쟁의 흔적을 찾아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우리 현대사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이런 낯 뜨거운 일들은 휴전선 답사 내내 나를 수시로 멈칫거리게 했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얼마나 아는가
나는 십여 년 동안 주로 역사를 주제로 하여 중국 곳곳을 여행했다. 그런데 2019년 연말에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국경이 닫히면서 나의 답사여행은 어쩔 수 없이 국내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에는 서해와 남해에서 바다의 역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서해 남해 다음에, 북해가 아닌 북쪽에는 무엇이 있냐는 여행 동반자의 코멘트를 계기로 휴전선 답사에 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한강하구 교동도에서 강원도 고성군까지 5박6일에 걸쳐 훑어나갔다. 첫 답사의 소감은 강렬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공간으로서의 대한민국, 특히 한국전쟁이란 결정적인 우리 현대사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크게 깨달았다. 이후 일곱 차례의 휴전선 답사와 세 차례로 나눠서 다닌 38선 종주, 대여섯 번의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도서 답사, 그 외의 대전형무소 탐방 등 총 90여 일간 답사를 다녔다.
답사를 전후로 체크하게 되는 내 머리 속의 한국전쟁은 속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6.25란 한마디로 압축되는 김일성의 남침과, 포탄을 지고 적진에 뛰어들면서까지 장렬히 전사하면서 처절하게 지켜낸 국군이라는, 피아가 선악으로 명료하게 구분되는 서사. 그러나 길 위에서 대면하는 한국전쟁은 기존의 서사와는 크게 달랐다. 다르거나 틀렸다고 하기보다는 그것 이외의 무엇인가가 대단히 많이 보였다.
오늘날 내가 속한 공동체로서 대한민국, 북한에 빗대어 말하면 남한은 70여 년 전에 시작되고 3년이나 지속된 한국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분투하여 초토화된 땅에서 큰 성과를 이루었다. 국가의 위상 역시 당시와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굳혀버린 남북의 갈등과 국제질서의 압박이라는 대단히 불편한 구조를 털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짊어지는 정치적 부담과 경제적 사회적 손실은 물론 전국민의 상당한 불안과 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 피해는, 숫자로 계상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정전협정으로 전면전이 중지된 지는 70년이 되었다. 그럼 그것을 치료하는 것 역시 70여 년의 세월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장기간에 걸친 준비의 하나로 한국전쟁의 이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을 꼽는다.
전쟁을 밀어내고 평화를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