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화가 김홍도가 그린 <대장간>. 메질꾼의 메질 모습에서 흥이 넘친다. 일꾼들 누구나 힘겨워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작품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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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檀園) 김홍도.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화가다. 특히 풍속화에 능했다. 그의 작품이 있었기에 18세기 후반 우리 사회의 면면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서민들의 삶의 풍경이 동영상처럼 생생하다.
보물 제527호로 지정된 《단원풍속도첩》에 김홍도의 풍속화 25점이 실려 있다. 기와 이기, 주막, 빨래터, 자리 짜기, 벼 타작, 점심, 대장간, 논갈이, 서당, 무동(舞童), 점괘, 고누놀이, 씨름, 그림 감상, 길쌈, 담배 썰기, 편자 박기, 활쏘기, 우물가, 고기잡이, 장터길, 나룻배, 신행, 노중상봉, 행상 등이 작품의 주제다.
<대장간>에는 어른 키보다 높은 화로가 서 있고, 둥그런 모루가 놓여 있다. 대장간의 기본 작업 환경은 의외로 간단하다. 작품에는 5명이 등장하는데, 앉아서 집게를 들고 불에 달궈진 쇳덩이를 이리저리 뒤집는 대장이 화로 옆에 있고, 메질꾼 2명은 엇갈려 메질을 한다. 화로의 옆쪽이면서 대장의 뒤편에서는 어린 총각이 발을 굴러 풀무질을 한다. 그리고 지게를 벗어 놓은 젊은이가 숫돌에 낫을 갈고 있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4명은 모두 고깔처럼 보이는 흰색 모자를 쓰고 있다. 메질꾼 2명과 낫 가는 젊은이는 짚신을 신었는데, 대장은 짚신이 아니라 가죽신인 모양이다. 화면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풀무질하는 총각도 짚신일 게 뻔하다. 낫 가는 젊은이 옆에는 깨진 도자기가 놓여 있다. 숫돌에 끼얹을 물을 담는 용도다. 낫은 가느다란 모양새로 보아 굵은 나무를 쳐 내는 데 쓰기보다는 풀이나 벼를 베는 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김홍도는 대장간 모습을 병풍 그림에도 그려 넣었다. 1778년에 여덟 폭짜리 <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를 그렸다. 그중에 <노변야로(路邊冶爐)>, 즉 길가의 대장간이 있다. 제목을 대장간으로 잡았으면서도 정작 화면의 중앙은 초가집 주막이 차지하고 있다. 주막 앞뜰에는 앉아서 밥을 먹는 젊은 과객이 있고 커다란 버드나무의 풍성한 가지는 주막의 지붕까지 가린다.
과객에게 밥상을 내주고 방안에 들어앉은 아낙은 나그네의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나무 밑에는 2명의 어른이 쉬고 있고, 그 주막 마당의 귀퉁이를 대장간이 차지하고 있다. 키 낮은 화로와 모루를 가운데 두고 대장과 메질꾼 2명이 작업 중이다. 메질꾼들은 웃통을 벗어젖혔고 반바지 차림에 맨발이다. 풀무꾼은 발을 굴러 화로에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 한쪽에서는 지게를 벗어 놓고 낫을 가는 동네 사람도 있다. 사람이 많이 찾는 사통팔달의 공간인 주막과 메질 소리가 요란한 대장간이 같은 터를 차지하고 있다. 주막이 주업이고 대장간은 부업이었을 것만 같다. 그러면, 주막집 여주인과 대장간 대장은 부부 사이일까. 그림을 보고 있자니 문뜩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이 병풍 그림마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감상평을 남겼는데, <노변야로>에는 '무논에 해오라기가 날고 키 큰 버드나무에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대장간에서는 쇠를 두드리고, 나그네는 밥을 사 먹는다. 시골 주막거리의 쓸쓸한 풍경이 한적한 맛을 느끼게 한다'고 적었다.
김홍도와 김득신의 <대장간> 닮은 점과 다른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