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이 됐어야 할 피죽이 지붕 위로 올라가니 때깔도 좋다.
노일영
귀농 3년차 이상하게 변해버린 남편
체력 문제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남편이 이제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못 느낀다는 점이다. 처음에 귀농했을 때는 삶의 모든 환경이 일시에 전면적으로 바뀐 터라, 얼떨결에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접하는 모든 일상이 사소한 것조차도 새롭다 보니, 남편은 요런 일도 재밌고, 요것을 조렇게 하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귀농한 지 3년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 슬슬 피로와 권태가 남편의 혓바닥 위에서부터 층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말투가 거칠어지고, 사용하는 단어들이 부정적인 낱말로 바뀌고, 시X 같은 욕지거리가 가끔 게거품처럼 남편의 입 주변에 묻어 있었다. 그러다 그 피로감과 권태감은 암세포가 전이되는 것처럼 혀에서 뇌로 그리고 온몸으로 번져 나갔다.
남편은 귀농 3년차가 지나자, 내가 본 적도 없는 이상한 캐릭터로 변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남편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귀농 생활은 우리가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소농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자급자족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귀농하기 전 그리고 갓 귀농했을 때, 남편의 계획은 야망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키운 농산물로 자급자족의 삶을 살고, 생산하는 작물을 판매해 생활비를 마련하겠다고 작정한 남편은 야심만만했다. 하지만 벼·밤·두릅·마늘·고추·감 같은 작물을 조금씩 소규모로 농사지어 팔아도 우리 두 사람의 인건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형 농기계를 소유하고 양파나 벼 같은 작물 하나만 대량으로 재배하는 대농이 돼야, 농촌에서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농촌·농업·농민의 현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 남편은 의기소침해져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남편이 흙집을 혼자 짓겠다고 나댈 때, 내가 허락한 이유는 귀농 초에 활달하고 낙천적이던 남편의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별명인 '경솔의 아이콘'에 걸맞은 경솔한 흙집이 탄생해서 경솔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겠지만, 남편이 예전의 여유만만하고 느긋한 성격을 되찾는 걸 보고 싶었다.
경솔하고 어설픈 흙집이 어떤 식으로든 형태를 드러내고 나면, 통장의 잔고는 작살날 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질 것 뻔했다. 하지만 남편의 몸과 마음에 침투한 피로와 권태가 더 많이 전이돼 숙주인 남편을 죽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