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시 통구 고분군 산하 우산하 고분군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벽화 무덤 오회분 5호 고분.
문화재청
우리 민족의 신화에서 대장장이가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낸 경우는 고구려와 신라에서 찾을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지배계층 무덤에 기막힌 솜씨의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신라의 제4대 임금 탈해왕 설화에서는 신분 상승을 위한 코드로 대장장이를 활용했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에는 고구려 고분군이 펼쳐져 있다. 이 가운데 대장장이 그림이 그려진 무덤은 오회분 4호묘이다. 오회분(五盔墳)은 투구(盔) 모양으로 생긴 5기의 묘를 말하고, 4호묘란 그중 네 번째란 의미이다.
이 무덤의 형식은 '흙무지돌방무덤'이다. 위로 봉긋하게 투구처럼 솟은 부분은 흙으로 쌓고, 그 밑 무덤의 방은 돌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고구려인들은 그 방의 천장부터 벽면까지를 온통 그림으로 채웠다.
6세기 후반 고구려 벽화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오회분 4호묘의 대장장이 그림은 모루 위에 달궈진 쇠를 올려놓고 망치로 두드리는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했다. 잘 다듬은 돌 표면에 직접 그렸는데 당시 대장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전문가들은 '대장장이 신'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한다. 그 그림 옆에는 '수레바퀴 신'도 그렸다.
(※ 오회분 4호묘의 '대장장이 신' 그림에 대해서는 나중에 게재할 '그림으로 보는 대장장이' 편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한 '대장장이 신'
오회분 5호묘와 오회분 4호묘에는 청룡, 백호, 현무, 주작 등 4신 이외에도 공통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다. 불의 신이다. 오른손을 뒤로 뻗어 불씨를 받들고, 왼손을 어깨 뒤로 넘겨 옷깃으로 불씨를 감싸는 듯하고, 허리를 젖히면서 몸과 얼굴을 오른쪽으로 반쯤 틀어 불씨를 바라본다. 이 구도는 5호묘와 4호묘에 각각 그려진 불의 신 모습에서 같이 나타난다. 두 그림이 너무나 흡사하다.
불을 들고 춤을 추는 듯한 모습에서는 둘 다 똑같이 여성스러움마저 느껴진다. 다리를 모으고 무릎을 굽힌 모양도 많이 닮았다. 무릎을 굽힌 그 모습은 마치 신라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비천상(飛天像)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고구려 불의 신은 무릎으로 디딘 채 몸을 뒤로 젖히면서 춤을 추는 형태여서 완전히 무릎을 꿇지는 않고 반쯤 일어선 모습이고, 신라 비천상 천인(天人)은 무릎을 더 단정히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형태다.
고구려 벽화 속 두 불(火)의 신 그림은 마치 한 사람이 그린 듯하다. 5호묘는 6세기 전반, 4호묘는 6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조성 연대를 놓고 보면 수십 년의 차이가 난다. 같은 사람이 그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부모 자식 간에 대를 이어서 그렸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