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
연합뉴스
최근 연금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금개혁은 두 차례 있었는데 1998년이 1차 개혁, 2007년이 2차 개혁이었다. 연금개혁에 대한 시각은 크게 보장성강화론과 재정안정론으로 나뉜다. 전자는 급여수준 향상을, 후자는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우선시하는 입장이다.
또 연금개혁의 내용 혹은 방법은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으로 나뉜다. 전자는 현행 제도의 틀 내에서 주요 제도변수를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제도변수는 파라미터 또는 모수라고 부르는데 기여율이나 소득대체율, 연금수급연령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후자는 연금의 제도 틀 자체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두 차례 연금개혁은 모두 재정안정론 입장에서 추진되었다. 2차 개혁 때의 기초연금 도입을 제외하면 소득대체율을 하향조정한 모수개혁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 두 차례의 연금개혁 이후 주목할 만한 개혁 시도로는 2019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때 비록 최종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연금개혁 역사상 가장 폭넓은 합의를 도출했다. '소득대체율 45%-기여율 12%'라는 다수안에 노동계와 시민단체 및 청년단체까지 합의한 것이다. 당시 경사노위 다수안에 끝까지 반대한 세력은 경영계와 그들의 편을 든 재정안정론자들이었다.
작년 11월에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연금개혁특위는 산하에 민간자문위를 두고 여기에 재정안정론과 보장성강화론을 각각 대표하는 두 전문가를 공동위원장으로 위촉했다. 보장성 강화와 재정안정을 병행 추진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민간자문위는 연금개혁에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금개혁특위는 민간자문위의 활동기한을 연장함으로써 보장성 강화와 재정안정이 동시에 추진될 기회를 열어두었다.
내 돈 내고 이자 붙여 받는 게 연금?
연금개혁을 올바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을 내가 젊을 때 돈을 내고 여기에 이자를 붙여 노후에 돌려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현재 국민연금 급여를 받는 퇴직세대는 그들이 젊었을 때 냈던 돈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젊은 세대가 매달 납부하는 기여금(연금보험료)에서 받아 간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국민연금에는 왜 기금이 쌓이는가? 그것은 국민연금을 처음 설계할 당시 일정 기간 완충기금 목적으로 국민연금을 쌓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여금 납부자가 연금 수급자보다 훨씬 많아서 기여금 수입으로 연금을 지급하고도 돈이 남아서 그것이 기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면 국민연금의 최초 설계자들은 왜 기금을 쌓기로 했을까? 국민연금을 처음 설계할 당시 노인들의 소득원을 조사한 통계를 보면 자녀 의존이 78.2%에 달했다. 나머지는 공적연금 1.7%(주로 특수직역 연금), 저축 및 재산 9.0%, 취업 21.8% 등이었다(중복응답).
효 문화가 상당히 남아있어서 사적 이전소득이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최초 설계자들은 당시의 효 문화를 국민연금으로 곧바로 대체하는 선택을 하지 않고 최소 15년을 가입해야 연금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설계한 것이다.
최초 설계자들은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1980년대 중반이 연금 도입의 적기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인구고령화를 예측했고 그에 따라 제도가 성숙하면 기여금을 인상해야 하기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로부터 기여금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최초 설계자들은 국민연금 급여는 15년 후부터 지급하도록 해서 베이비붐 세대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부모를 사적으로 부양하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연금에 기여금을 납부하도록 하여 그들의 퇴장까지 완충기금을 쌓게 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기금은 기여금 인상 부담을 완충하지만 제도성숙에 따라 점차 소진되고 종국에는 기여금으로 연금급여를 모두 충당하는 것으로 설계됐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을 처음 도입할 때 기여금 3%, 소득대체율(국민연금 가입 기간의 평균소득 대비 연금으로 지급하는 비율) 70%로 한 것은 재정적으로 불균형한 설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내 돈 내서 거기에 이자 붙여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노인 세대를 당대의 젊은 세대가 부양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3% 기여금 - 70% 급여'를 직접 연결 짓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적게 내고 많이 받게 설계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