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모든 일상을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둘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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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울(kimhw0912)등록 2023.03.03 10:09
2017년생 만 5세 삼남매 중 둘째 아이는 가정보육을 마치고 이번주 유치원에 입학한다. 2년 전 코로나 19로 거리두기가 활발한 시기에 5개월 가량 유치원에 잠시 다녀본 것을 제외하면 올 한 해가 취학 전 마지막으로 온전히 기관에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셈이다.

둘째 아이는 기관을 특별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이런 아이가 태어나겠구나 싶을만큼 기질이 예민하지도 않은 보통의 사랑스러운 어린이다. 지금까지 이런 아이의 가정보육을 이끌고 온 것은 온전히 주양육자인 엄마의 선택이었다. 친정도 시댁도, 형제자매조차 그 누구도 가정보육을 응원하는 이는 없었다. 육아의 힘듦을 알기에 그랬겠지만, 주양육자로서 존중받지는 못했다. 가정보육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첫째 아이를 가정보육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는 '어린이집은 언제 보내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른 시기에 보내게 되어 기관을 거부하게 되었고, 이후 가정보육으로 이어졌다. 24시간 첫째 아이와 모든 일상을 함께 하면서 둘째 아이는 아침에 기관에 보내놓고 오후에 만난다는 것이 엄마로서는 내손으로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먼 훗날 혹여 둘째 아이가 왜 본인만 기관에 다니게 되었냐고 물으면 '누나는 엄마랑 있고 싶어 했어.', '누나는 예민했고 넌 순했어.' 따위의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게 잘 되는 길인지 망하는 길인지 모르지만 다 같이 함께하자는 선택을 했다. 어쩌면 이런 심보였을지도 모른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내 자식한테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하는듯하다. 잘 커줘서 고맙고, 엄마도 인간인지라 못해준 게 떠올라서 미안하다. 둘째 아이의 유아기를 돌이켜보면 그런 마음이 더욱 밀려온다. 엄마와 그림책 한번 보려면 20개월 위의 누나와 20개월 아래의 여동생을 제쳐야 한다. 가끔 있는 요구사항도 동생을 수유하고 있거나, 누나의 화장실 신호로 출동해야만 해서 뒤로 미뤄지곤 했다. 어쩌다 엄마의 시간을 눈치게임으로 얻어내 무릎 위에 앉으면 여지없이 누군가 한 명 외친다. "나도! 나도!" 결국 그날도 내 무릎 위에는 두 명의 아이가 앉아있었다.

드라마 TVN의 <응답하라 1988>에서도 둘째 딸의 서러움을 토로하는 인물 덕선이의 장면을 만나볼 수 있었다. K-장녀도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 서러운 건 삼 남매 중 둘째라는 것이 마음 깊숙이 새겨졌다.

살기 위해 아기때, 유모차, 분유, 기저귀, 놀잇감 등 챙길 수 있는 건 모두 챙겨서 날씨 상관없이 놀이터를 투어하며 집 밖에서 두 시간은 기본으로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다섯 살 첫째 아이는 킥보드를 타고 다음 놀이터로 먼저 빠르게 이동했고, 그 뒤를 따라 막내를 아기띠로 안고 둘째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런데 도착한 놀이터에 첫째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아이에겐 휴대폰도 없었고, 어디에서 어떻게 찾나 싶어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돼버렸다. 대단지 아파트를 아기띠 한 채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왜 뛰는지 모르는 둘째에게는 빨리오라고 울며 소리쳤다.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인상착의를 말한 채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더 이상 어렵겠다고 느껴 난생처음 112에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경찰관분들의 도착과 함께 첫째 아이를 발견한 분이 관리사무소 앞에 데려다주셔서 사건이 종결되었고, 감사인사를 드리며 우리는 얼싸안고 부둥켜 울었다.
 

190사이즈 실내화 손바닥보다 작았던 출생 후 120사이즈 첫 아기 신발에 비해 이제 손바닥보다 커진 7살 아이의 190사이즈 실내화 ⓒ 김한울


여태껏 기관에 가도 좋고, 엄마랑 집에 있어도 좋다는 불분명한 의견을 주었던 아이는 작년 겨울부터 달라짐이 느껴졌다. 아이는 가정 밖 세상에 나갈 준비를 마치고 유치원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주었다. 더 이상 나만의 고집대로 가정보육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작년 11월 '처음학교로' 사이트를 통해서 유치원에 접수하고 곧 입학을 앞두고 있다.

실내화를 구입해서 준비해 놓고, 진심을 말할때면 자주 눈물이 나오는 엄마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이지만 꼭 한 번은 해야겠기에 아이에게 말했다.
"6살까지 엄마랑 모든 일상을 함께해 줘서 고마웠어. 이렇게나 잘 커줘서 고마워!"
도도한 표정으로 단답형 대답을 마친 아이는 오히려 유치원에 간다고 하니 정말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디데이만 기다리고 있는 듯해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집 둘째와 더불어 세상의 모든 둘째에게 말해주고 싶다. '훨훨 날아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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