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픽업은 쉬엄쉬엄 하는 것이라는 편견

조부모와 전업주부의 아이돌봄에 대한 고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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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진(clairecho)등록 2023.02.28 10:13
이틀 후면 아이의 학교가 개학을 한다. 당연했지만 춥고 긴 겨울방학이었다. 12월 24일에 시작해서 중간에 2주가량 개학했던 기간을 제하고 나면 거의 두달을 아이의 오전과 중간 자투리시간을 책임졌다. 우리 가정처럼 엄마가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늘어난 맞벌이 추세에 따라 아이들은 대부분 할머니와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는 다섯시경,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받아주는 사람 역시 대부분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할머니들이다.

처음엔 아이를 기다리는 보호자 중에 혼자 엄마라는 사실이 어색했다. 유치원 때만해도 할머니보다 엄마비율이 높았던 것 같은데 워킹맘의 무덤이라는 초등학생이 되고 도리어 할머니 비중이 늘었다. 60대의 할머님들은 인자해 보이셨고 아이들에게도 다정하셨다. 엄마만큼 세밀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어딘지 더 편안하고 자상해보이셨다. 서로 육아도 돕고 안부도 나누면서 픽업시간이 되면 버스정류장에 수다꽃이 피우시곤 했다.

어느날부터인가 할머님 한분이 불안해보이셨다. 손녀손자 두명의 케어를 전담하고 계시는 중인데 손자와 손녀의 셔틀버스 시간이 거의 겹치는 것, 다시 말해서 이론상으로는 손자의 도착시간은 5시5분, 손녀의 도착시간은 5시10분인데 학원의 사정에 따라 손자의 도착시간이 5시 10분이 되기도 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두 아이는 횡단보도로 건너야 하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버스정류장에서 각각 내리게 되어 할머님이 몹시 난처한 상태셨다.

아이를 픽업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일인가? 어린 두 아이를 걱정하시며 애타하시는 할머님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할머님께 손녀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아직 어리지만 낯을 가리는 손녀는 별로 가깝지 않은 아줌마가 횡단보도를 건너게 하는 점이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할머님은 손녀의 안전이 보장되어 그나마 나아지신 듯했다. 덩달아 나도 한결 마음이 놓여서 편안해졌다.

할머님들과 버스정류장에 앉아 아이를 기다리다보면 나만 능력이 없어서 여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가끔 흘려듣는 말로 집에 있는 엄마를 비하하는 듯한(집에서 놀아서 좋겠다와 같은) 표현이라도 들리면 곧바로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할머님들과 어지간하면 대화하지 않고 목례만 하고 피하곤 했는데 어려운 상황을 함께 공유한 후로 자연스레 등하원 픽업의 어려움을 나누게 되었다. 노년의 할머님들께 손자손녀 등하원은 아무리 갓난 아이가 아니기에 크게 보살필 일이 없더라도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이십대엔 20킬로, 30대엔 30킬로, 40대엔 40킬로... 60대엔 60킬로로 인생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고.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점점 기력이 없어지기에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마음놓고 쉬기 시작하면 시간이 더 빨리 간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그럼 이 속도를 아이의 하루에 대입해볼까? 학교에 가고 흘러가는 시간 3,4시간 남짓 그리고 오후 1시간 길면 2시간 단위의 학원시간. 아이가 기관에 가 있는 시간만큼 여유시간이 생기긴 하지만 중간중간 걸어서 채 5분이 안되는 거리라도 재게 움직여야 하는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이 시간이 60대 할머니들에겐 정말 수월하기만 할까?

할머님들은 말씀하셨다. 잠시 쉬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려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어딜 나가더라도 가는데 걸리는 시간, 오는데 걸리는 시간을 반드시 잘 계산해야 한다고. 손자 손녀를 돌보면 예쁘지만 아이들과 대화하다보면 엄마의 공백이 아이를 힘들게 한다는 심리적인 문제도 느껴야 하고 아이의 상황도 파악해야 하고 엄마와도 적절히 소통도 해야하는 등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그렇다면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내 삶은 어떨까. 집에서 노느라 속편하고 정말 좋기만 할까?
먼저 아이가 학원이나 학교에 갈 때면 책이나 준비물은 잘 챙겼는지, 숙제는 다 했는지 아이가 챙겼다고 해도 한번더 봐준다. 그리고 아이의 생활 중에 어려움은 없는지 꾸준히 묻는다. 그래도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아이들은 피해버린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다가 문제가 커질까 봐 늘 걱정이 앞선다. 다행히 옷이 불편하다거나 배가 고프다거나 하는 사소한 문제라면 조금씩 간식을 챙겨가거나 여벌옷을 들고나가서 금세 해결해주지만 이도저도 아닌 경우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켠에 늘 있다. 또 아이가 학교나 학원에 가고나면 식사문제로 골똘히 고민하곤 한다. 더 열심히 아껴야 하기에 가급적이면 장은 자주 보고 음식은 딱 알맞은 양만 만들려고 노력한다. 책도 사오기보다는 주로 빌려서 읽히다 보니 도서관에 발품파는 일도 흔하다. 나머지 가사일이랴 말해 무엇하랴. 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 시간도 한정적이다. 아이 학교간 시간 내에, 학원간 시간 내에 무조건 끝내야 한다. 시간 계산이 잘못되면 일도 안하면서 아이도 제대로 못본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조급해질 수 밖에 없다. 절대로 집에 있는 전업주부의 삶이 속편하고 좋은 일은 아니다. 희생하고 있다고 표현하면 오버일까?

할머님들께 따님들을 내게 보내시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와하하 웃으시는 할머님들을 바라보며 그분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나는 분명히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아파도 안되고 죽어도 안되는 것처럼 워킹맘의 아이들은 큰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자라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문제 외의 깊은 문제를 재빠르게 읽어주기에 조부모는 연로하시고 일하는 엄마는 바쁜 생활로 한걸음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독립심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마이크로 초초예민맘이라 아이 곁에서 레이다를 곤두세우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만 뻗으면 언제든 상의할 든든한 보호자가 곁에 있다는 느낌은 아이에게 긍정적인 가치관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를 픽업하기 전, 과거에 함께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나누었던 친구와 통화를 하며 현재의 어려운 생활고를 나누었다. 오른 학원비와 고공행진하는 물가 속에 우리의 생활은 빠듯해질대로 빠듯해져있다. 그럼에도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편안하게 간식 먹고 책읽고 쉬는 안식처가 되어주기 위해 우리는 집에 있다. 나도 아이를 이모님께 맡겨봤고 친구도 시어른께 아이를 맡겨봐서 그 간극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말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그 간극, 그 간극으로 인해 오늘도 전업맘들은 전업맘대로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조부모님은 또 조부모님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뜻대로 되는 일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그저 노력할 뿐. 그리고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선택을 해보는 것이다. 비록 그 순간이 조금 더디게 흘러가고 힘들더라도 마음이 모이면 헤쳐나가게 될테니까. 삶에는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서로 이해하고 노력하는 마음으로 적절하고 지혜로운 방법들을 터득해나가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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