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사회주의의 문제점과 교훈

검토 완료

유철수(eroika)등록 2023.02.28 09:51
소련 사회주의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붕괴할 수밖에 없었던 내적인 요인은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고 앞으로 건설할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를 위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아래 내용은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 리처드 울프와 스티븐 레스닉이 쓴 책『경제학의 대결』(연암서가/2020)의 527~531쪽을 정리한 것이다.
소련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보면 노동자들에게 잉여 생산물에 대한 의사 결정권이 없었다는 것이다. 울프와 레스닉은 이를 잉여의 조직화 문제라고 한다. 이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총 생산물에서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인 잉여 생산물에 대한 전유(appropriation의 번역어인데, 쉬운 말로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생산물, 즉 잉여가치를 자본가들이 전유한다.)와 분배 권한을 누가 가지느냐의 문제이다. 소련에서는 노동자가 자신들이 생산한 잉여를 집단적으로 전유하고 분배할 권리를 가지지 못했다. 국가 관료, 즉 각료회의가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를 전유하고 분배할 권한을 가졌었다. 이 각료회의는 민간자본주의 기업의 이사회와 비슷한 활동을 했다. 소련에서는 기업을 국가가 소유했고, 사회주의를 천명했지만, 노동자가 자신들이 생산한 잉여를 집단적으로 전유하고 분배할 권한이 없고, 국가 관료(각료회의)가 자본주의 기업 이사회처럼 잉여를 전유하고 분배하는 권한을 가졌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울프와 레스닉은 소련을 국가자본주의 체제라고 불렀다. 이는 모든 기업의 국유화(국가의 재산 소유)와 계획경제만으로 사회주의체제가 될 수 없으며,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잉여의 전유와 분배 권한을 가져야 사회주의라 할 수 있다는 비판의 의미이기도 하다. 또 이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소련에서 국가가 재산 소유권을 가짐으로써 재산 소유권을 사회화 했고, 시장을 중앙계획경제에 종속시켰기 때문에 소련이 사회주의 체제라고 판단했던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소련의 몰락을 사회주의 몰락으로 이해했지만, 울프와 레스닉은 국가자본주의 체제에서 민간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으로 본다.  
잉여의 분배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각료회의는 공산당과 정부 지도자들이 세운 우선 수위에 따라 잉여를 분배했다. 중공업 및 군사 장비의 확대, 국가 관료 및 국가안보기구 지원, 공산당 지원, 공공재 등에 자금을 대기 위해 분배가 이루어졌다. 중공업 확대에 초점을 맞춘 것은 공산주의 첫번째 단계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 생산력 발전이라는 정통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른 것이었고, 따라서 자원을 소비재보다 자본재 생산기업에 더 많이 할당했다. 군사 장비의 확대는 미국과 군비 경쟁뿐만 아니라 소련의 외교 정책 지원을 위해 필요했다. 국가 산업의 계획, 조직, 관리를 위해서 국가 관료가 증가했고, 여기에도 분배가 우선됐다. 자본주의 기업에 존재하는 긴장과 투쟁이 소련 기업 안에서도 생겼는데, 이런 긴장과 투쟁을 관리 공산당 간부와 비밀 경찰에게 분배가 더 많이 이루어졌다.  
 

혁명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어야 한다. ⓒ freepik

 
이리하여 국가관료는 1920년대 종반에서 1970년대까지 노동자들의 잉여를 전유하고 자신들이 결정한 우선순위에 분배함으로써 소련을 주요 산업 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더 많은 잉여 생산을 위해 압박을 받았고, 잉여의 전유와 분배에 대한 권한은 없었기에, 그들의 삶엔 스트레스와 긴장이 만연했다.
 물론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교육, 주택, 운송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보건의료 서비스를 무상 또는 저렴하게 제공하고, 스포츠 및 예술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했지만, 1970년대 이후 심각해지는 노동자들의 소외를 극복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국가 수요를 맞추기 위해 더 많은 잉여를 생산해야 했기에, 분노가 증가했고, 불성실이 뒤따랐다.
소련이 주요 산업 강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본재 산업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상승했으나 임금은 정체되었다. 따라서 소련 국가자본주의의 성공은 노동자 착취율 증가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국가 관료와 당 간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국가 건설을 위해 썼던 전략은 노동자의 희생과 노동자에 대한 통제였다. 노동자들을 세계의 평화, 조화, 풍요를 가져다 주는 문명의 전위로 선언하면서 희생을 설득했다. 사회주의 문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저발전 경제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소련을 파괴하려는 자본주의로부터 방어해야 하기에 노동자들이 소비를 희생하고, 자원을 성장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잉여 생산물을 경찰 기구에 분배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분노를 감시하고 통제했다.
 1970년대 소련 민중들은 미국과 유럽의 생활 수준을 누리려는 욕구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국과의 군비 경쟁 비용,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 국가 관료 및 당 간부 증가로 인해 잉여가 이런 쪽으로 흘러 들어 갔고, 또 생활 수준을 높이려면 생산성 높은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의 부담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련 민중들은 소련의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높아졌고, 소련의 사회경제체제가 사회주의로 선전되었기에 그런 불만과 불신은 사회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상술한 점이 울프와 레스닉이 연구하고 파악한 소련식 사회주의 즉 소련 국가자본주의의 중요한문제점이었고, 소련식 사회주의 체제에 내재한 주요한 붕괴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은 노동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사회를 표방했지만, 잉여 생산물에 대한 전유와 분배 권한을실제 생산자인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가지지 못하고, 관리자인 각료회의가 가짐으로써,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노동의 소외를 겪었다. 사회주의는 노동의 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이념인데 소련은 그렇지 못했으며,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착취와 통제를 가했다.
따라서 우리가 세울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에서는 잉여 생산물의 전유와 분배에 대한 권한을 노동자들이 가져야 한다. 또한 전체 생산 계획과 분배에서 노동자들이 의사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그리고 사회의 미래 청사진을 설계하는 데 노동자들의 의사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또한 혁명을 완성하기 위한 국가의 운영에서 노동자들이 의사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사회 혁명을 통해서 국가 권력을 잡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시작점일 뿐이다. 공산주의 사회로 완전한 혁명을 완수하는 것은 기나긴 여정이다. 노동의 소외가 완전히 사라지고 인간의 소외가 완전히 사라질 때 공산주의 사회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 국가에서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혁명이 완수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들과 자본가들의 공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되어야 하고 공산주의 혁명의 완성을 향해 가야 한다.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국가에서는 노동자들이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세계 공산주의 혁명의 완성을 위한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뉴스 참세상에 송고함.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