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에도 안늘던 보드실력이 이십대에 향상된 비결은?

1퍼센트의 너그러움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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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진(clairecho)등록 2023.02.27 09:47
곧 3월, 아이의 봄방학을 며칠 남겨두고 남편은 기어이 스키장을 예약했다.
나에겐 분명 한결같이 가나마나한 스키장이었는데 이번엔 마지막 스키를 타면서 약간 기분이 몽글몽글, 어딘지 아련하고 추억에 젖었다. 
이유인 즉, 실력 향상이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에 촬영한 동영상에서 우리는 분명 패밀리 슬로프(초중급코스)에서만 스키를 탔다. 하지만 이번엔 두려워했던 브라보 슬로프(중급코스)에서 온전히 에스라인을 그려가며 스키를 즐길 수 있었다.  

갑자기 내가 왜 보드를 계속 못탔을까,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다.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 스키에 별 미련이 없었던 주요한 두가지 이유는 아무리 타도 안느는 것 같은 운동신경 제로인 내 몸 & 나만 버리고 저 멀리 먼저 내려간 몹쓸(!?) 사람들로 인한 춥고 쓸쓸했던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볼품없던,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던 내 보드실력이 마침내 향상된 것이다!

스키트립이 반복될수록 사실 내 마음 한구석은 무거워져갔다.
'이제 곧 운동신경 좋은 남편과 스펀지처럼 무엇이든 흡수해내는 아이가 챌린지 슬로프(상급코스)로 올라가버릴거고 나는 중급코스에 남겨지겠구나, 이십대에 사람들과 보드 타던 때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라고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서였다. 그래서 이틀을 이어서 스키를 타게 되면 곧잘 '오늘은 안탈래, 다리가 너무 아파.' 말하며 뒤로 빠지기 일쑤였다. 아니, 출발 전부터 난 안간다며 집에 드러눕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는 지치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위해 4시간 리프트권과 보드렌탈비용을 치르고 동일하게 혹은 더하게 아이를 챙기고 본인 스키장비를 이고지고 다녀도 한마디 불평이 없었다. 스키타는 4시간여 아이 뒤만 봐주는 일로 시간이 다 흘러버려도 그냥 그 자체로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 스키를 좋아하니까 이렇게 함께 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거다. 

그래서 결국 두손두발 다 들고 따라다니게 되었다. 함께 스키장에 있어만 주면 되는 거니까. 단 둘이 다니기엔 아이의 예민한 필요를 아빠가 못 읽어주니까. 나는 돌봄 역할 반, 경치 구경 반으로 함께 다니기로 결심했다. 온갖 비용에 대한 마음 한켠 아쉬움은 남편과 아이가 건강해지니까 괜찮다로 퉁치고!

그렇게 우리는 지난 시즌 총 여섯번의 스키트립을 다녀왔다. 어떨 땐 당일 하루만, 어떨 땐 숙박까지 하면서 이틀을 탔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를 가르쳐주는 남편을 바라보며 혼자 보드를 탔던 것 같다. 집에서 매일 보는 개수대 대신 파란 하늘과 하얀 설원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 뿐이었다. 그냥 조용히 정해진 시간을 충실히 보드를 타면서 소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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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해 1월부터 갑자기 아이의 실력이 쑥 늘고 남편과 아이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이 많아졌다. 날렵하게 업다운을 반복하며 멀어져가는 둘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아직은 같은 슬로프를 탄다는 생각을 위안 삼았다. 그리고 아이와 남편도 느린 나를 기다려주었다. 때때로 나를 버리고 둘이 타기도 했지만 어쨌든 쉬는 시간마다 우리는 함께였다. 그러므로 이십대의 나와는 분명 달랐다.

그리고 이번 스키트립에서 신기하게도 나는 여유롭게 에스를 그리기 시작했다. 다운을 하면 정말 안넘어지거나 넘어지더라도 약하게 넘어진다는 자신감이 나도 모르게 쪄버린 옆구리살처럼 (ㅋㅋ) 차올라 있었다. 아이와 나, 남편은 셋이 줄을 지어 중급 코스를 내려올 수 있었다. (야호~!)

물론 당연히 우리 가족의 최약체는 나다. 하지만 같은 슬로프를 한동안은 공유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어 기뻤다. '이렇게 뒤처지진 않는구나.' 성의있는 노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말 감사하게도 내 실력이 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괜히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향상이 더 젊고 혈기왕성했던 이십대엔 이루어지기 힘들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어지러이 섞였다. 첫째 그땐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음편히 나를 바라봐주는 누군가가 없었다. 똑같이 장비를 렌탈하고 리프트권을 끊었지만 그 땐 오롯이 혼자 하는 것 같은 기분이거나 누군가에게 신세를 져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음식 한가지를 먹어도 나누어 먹는 기분이 아니라 각자의 것을 챙겼던 것 같다는 생각이 났다. 다 성인이니까. 각자 책임지는 것이 너무 당연한 거니까. 잔뜩 긴장해 있었다.

선생님은 아니더라도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배움이 수월해진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나이와 관련이 없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므로. 본인이 아무리 강하다고 우겨대도 어쩔 수 없이 낯선 환경 앞에서는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기보다 일단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존재이므로 나이보다는 그 분야에 대한 인지도나 경험치가 더 크게 작용한다.

날씨가 추우니까 따뜻한 내복을 단단히 껴입게 한다던가, 밥은 꼭 든든히 먹어야 한다고 알려준다던가, 초코바를 주루룩 늘어놓고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뒤늦게 체력고갈을 깨닫고 다 먹어버리게 하는 등 잘 먹는 것과 잘 입는 것에 남편은 집중해주었다.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넘어지는 나를 보고 함께 깔깔거려주었다.

솔직히 맨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은 비용이었다. 도대체 나는 그 때 돈 얼마가 없어서 보드를 잘 탈 수 없었나. 그 생각을 먼저 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돈보다 마음이 먼저였다. 처음엔 강습하는 선생님이 우리 아이 잘 돌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탔고 다음엔 남편이 잘 가르쳐주는지 감시하느라, 그 다음엔 아이와 함께 타고 싶어서, 그리고는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점점 마음이 발전했다. 그리고 남편의 환경조성을 위한 노력이 그림자처럼 뒤따랐다.

새삼 남편이 대단해보인다. '어떤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자라면 저런 마음을 갖게되는 걸까?' 부러워진다. 그리고 나에게도 기회가 생긴다면 타인에게 너그러움을 먼저 보여야겠다고 또 생각은 한다. 그 이후에 얻게 되는 것들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다.
그러나... 아휴... 이렇게 적어두고도 리프트 줄 새치기하는 십대 아이들 욕하고 보드렌탈할 때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신경도 안쓰고 '빨강 보드주세요, 파랑 보드주세요' 골라대던 이십대를 욕했던 나도 상기한다. 아이쿠. ㅋㅋㅋㅋㅋ 화장실 갈 때 마음과 올 때 마음 같은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도 누군가를 믿고 기회를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비록 지금 당장은 실망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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