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집의 굴뚝을 만들고 있다, 남편이 연통 주변을 벽돌로 감싸고 있다
노일영
서까래 위에 판재를 올리는 작업은 약 16일 정도가 걸렸다. 흙집은 자세히 안 뜯어보고 멀리서 대충 보면 이제 그럭저럭 집의 모양새를 갖춰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말에 따르면, 아직도 할 일이 천지였다.
판재 작업을 마친 뒤 남편이 바로 시작한 건 굴뚝을 만드는 일이었다. 남편이 돌들을 쌓아 기초를 만들 때 아궁이 구멍과 굴뚝 구멍을 내놓았는데, 이 굴뚝 구멍에 돌들을 차곡차곡 놓아 공간을 만들고, 굴뚝을 지붕 위로 빼는 작업을 시작했다.
남편은 먼저 처마 쪽 판재 위에 기계톱으로 구멍을 낸 뒤 굵직하고 길쭉한 스테인리스 연통을 꽂아 넣었다. 그리곤 산에서 주워온 돌들을 쌓아 연통의 아래쪽을 감싸고 황토와 황토 모르타르로 마감했다. 작은 돌들로 장식적 효과를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굴뚝 작업의 여기까지 과정에서 남편이 한 일이라곤 판재에 구멍을 내서 연통을 꽂은 것뿐이다. 그 외의 일들은 모두 내 몫이었고, 남편은 내 뒤에 서서 감독만 했다. 그런데 이 감독관이자 현장 소장을 자처하는 인물은 아주 까다롭고 입이 거칠었다.
나를 마치 인력 사무소에서 불러 놓고 최저 시급만 주면서 골수를 빨아먹으려는 듯 대했다. 얼마나 잔소리를 들이퍼붓는지 속에서 화가 치밀어 대판 싸우고 싶었지만, 분노를 삭이고 또 삭였다. 남편의 패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낮술 땡긴다고 왜 말을 못 하냐고!
남편은 일하기가 싫거나 낮술이 땡기면 괜히 내게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유도한다. 내가 그 작전에 말려들어 대판 싸움이 나면, 그걸 핑계로 작업을 중단하고 낮술을 마신다. 어이구, 왜 쉬고 싶다고, 낮술이 땡긴다고 말을 못 하느냐고!
내 추정으론 그게 다 남편의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상 간의 괴리 때문인 듯하다. 시아버지는 굉장히 성실한 분이었다. 자식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남편은 아버지를 경쟁 대상이자 자아의 이상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시아버지와 달리 좀 게으른 편인데, 이걸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만약 아버지였다면, 낮에 일을 쉬고 싶다거나 낮술이 땡기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아내와 싸우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나는 남편이 걸어오는 싸움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데,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작업을 끝내고 나자, 연통 주변을 벽돌로 쌓는 작업은 남편이 했다. 남편은 조심스레 조적을 하고 황토 모르타르로 벽돌을 고정시켰는데,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나름 깔끔해 보였다.
"나 몰래 언제 조적 잡부로 일한 적 있어? 벽돌이 쌓인 어설픈 모양새가 한 이틀 정도 벽돌만 나르며 어깨너머로 훔쳐본 솜씨구만. 그런데 받은 일당은 다 어디로 빼돌렸냐고."
남들이 보기에는 말을 뭐 저렇게 하냐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서로를 칭찬해 주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이런 말투는 원래 내 방식이 아니다. 이건 다 남편에게서 배운 것이고, 남편에게만 하는 말본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남편이 피식대며 입을 열었다.
"조적 잡부로 일한 일당으로 얼마 전에 드라이버 괭이 하나와 웨지 호미 2개 사 준 거 기억 안 나?"
굴뚝 작업이 끝나고 방의 천장이 될 부분의 지붕에다 광목을 깔고 황토를 올렸다. 그리고 황토를 열심히 밟아 주고, 흙이 바짝 마를 수 있게 사흘 동안 지붕 위에 내버려 뒀다. 이 사흘 동안 남편은 농사일은 쥐꼬리만큼 거들고 술만 퍼마셨는데, 사흘간 남편의 이 허랑방탕한 생활은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나비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