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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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밖엔 없는
'재미'라는 것이 무엇일까. '재미'의 사전적 의미는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다.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재미있는 농담을 곁들인 여상스러운 대화, 빠르고 통쾌하고 즉자적인 이야기의 영화와 소설 같은 것. 유쾌하고 즐거운 기분을 누리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럼 재미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재미의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역전시키면 "거창하고 심각하여 고통스러운 기분이나 느낌"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 이런 기분과 느낌을 '진지함'으로 부르고 있는 것 같다.
농담기 하나 없이 문어체로 나누는 진지한 토론, 느리고 불편한 데다 각자의 입장과 욕망이 교차하여 대자적인 영화와 소설들.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해답을 구할 수도 없기 때문에 답답하기까지 한 상황의 기분을 진지함이라고 한다면 누가 진지함을 바라고 기꺼워할까. 어쩌면 인간의 본성은 재미를 추구하고 진지함에서 멀어지려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진지하고 긴 글을 써놓고 '소소한 재미'를 주어서 '짤림을 방지'하던 짤방은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다 '밈'으로 불리는 일종의 문화로 상승했다. 이미지의 즉각적인 소비를 통해 재미를 유발하고 이내 휘발하는 '밈'은 대부분의 경우 그 자체로서 함의를 갖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를 통한 맥락을 구축하고 사유를 끌어내지 않는다.
'밈'으로 대표할 수 있는 최근의 즉자적인 소통 방식의 일반화는 결국 컨텍스트의 실종을 야기한다. '컨텍스트가 없는 언어와 행태'를 '문화'(여기에서의 문화는 매체에서 소비되는 문화상품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사유와 맥락이 거세된 채 순간의 '재미'만을 좇는 사회적 태도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재미마저 없는
재미의 의미가 아기자기한 즐거움이라면 우리 사회는 재미라도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놀리거나 괴롭히면서 낄낄대는 태도 혹은 휘발되어 버리는 감각을 위해 매 순간 계속해서 새로운 쾌감만을 만들어내기 위해 개인적·사회적 자본을 소비하여 '쾌감의 상품'만을 만들어내는 일은 즐거움일까. 사유와 맥락을 거세한 채 순간의 감각적 쾌감을 지향하는 것, 순간의 쾌감을 정말 즐거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흔히 '쾌락주의'로 해석되는 에피쿠로스는 즐거움의 의미를 몸에 괴로움이 없고 영혼의 동요가 없는 상태라고 규정했다. 과도한 감각적 쾌감이란 오히려 즐거움과 쾌락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했다.
1시간 30분이 지나면 잊히는 영화, 아무런 함의도 목적도 사유도 없는 소설, 일상 잡담을 벗어나지 않는 대화, 모든 불편함을 외면하는 삶의 태도를 우리는 즐거움이라고, 재미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단지 재미만을 좇는 사회적 태도에서 우리는 하다못해 '재미'라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낄낄거림이 휘발된 이후엔 무엇이 남을까
감각적 쾌감과 재미를 혼동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부추기는 사회문화적 태도가 빚어진 이후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남을 괴롭히고 놀리는' 일이다.
몇 년 전 개그콘서트가 종영한 이후 몇몇 개그맨들은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편한 사람들이 개콘을 종영시킨 셈'이라고 말했다. 못생긴 여성을 놀리고, 뚱뚱한 사람을 괴롭히고, 장애인과 유색인종을 비하하는 일을 불편해하지 않고 순간의 쾌감만을 즐기지 못하는 일을 '쓸데없는 불편함'으로 여기는 말이다. 골치아프고 심각한 주제를 뒤틀고 비꼬아 웃음을 주는 위트나 해학 같은 말은 마치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최근엔 SNL에서 MZ세대를 놀리는 놀이가 유행이다.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아이들, 문해력이 부족한 어린것들, 사회 생활도 할 줄 모르는 부적응자들로 묘사하며 그저 그들을 놀리는 데 집중하며 그것을 '재미'라고 말한다. 그 어디에도 어느 세대의 태도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 고민한 흔적도, 그들을 놀리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여 갈등의 골을 좁혀보겠다는 의지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그들'이라고 대상화해놓은 '타깃'을 실컷 놀리다 나 같은 불편러들의 목소리가 조금 커지면 '불편러들 때문에 농담도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또 새로운 놀림거리를 찾아 떠나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