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국
하급심의 무죄 판결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상대방 전화기에서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이 아니다. '부재 중 전화'가 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전화기 자체의 기능일 뿐 가해자가 송신한 '글'이나 '부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법에 따르면 스토킹범죄는 "전화,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 등(물건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가 있어야 하나 '부재 중 전화' 자체로는 글, 말, 음향 등이 '도달'되었다고 볼 수 없다.
반면, 유죄로 결론 낸 판결들은 스토킹범죄의 입법 취지에 주목,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부재 중 전화는 정보통신망이 아닌 전화를 이용해 '음향'을 도달하게 한 행위다. 가해자가 자신의 전화를 이용하여 피해자 전화기가 만들어 낸 음향 등(전화기의 벨소리, 부재 중 전화 표시)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도 스토킹이다.
'부재 중 전화'를 건 시간, 피해자의 불안감·공포심 등을 고려하라. 지속적·반복적으로 부재 중 전화 표시가 나타나게 한 행위는 글이나 부호 등의 도달만큼이나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고, 이런 해석이 다양한 스토킹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입법취지에 부합한다.
"부재중 전화가 주는 불안감․공포심 고려" 유죄 판결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스토커의 반복적인 부재 중 전화에 대해, 법률 문언대로 엄격하게 해석하여 '무죄'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스토킹범죄 처벌법의 제정 취지를 무색케 할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자. 스토커의 전화를 직접 받아서 공포를 느꼈을 경우만 협박이나 스토킹범죄가 성립하고, 공포심에 부재 중 전화로 남겨둔 경우는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고통일 뿐이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가해자의 지속적인 전화통화 시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한 판결은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법의 확장해석을 통해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해결책은, 대법원이 판례로 교통정리를 하거나 그것이 힘들다면 법률 개정을 통해서 논란을 잠재우는 것이다. 어느 쪽이건 이른 시일 내 정리가 필요하다. 스토킹범죄처벌법인 시행 중인 지금도, 스토커의 부재 중 전화는 아직 법의 사각지대인가.
[해설 : 스토킹범죄처벌법, 어떤 내용 담고 있나]
스토킹 행위가 발생했을 때 수사기관의 조치로는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가 있다. 응급조치란 경찰이 신고 즉시 현장에 나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피해자가 동의한 경우 상담소나 보호시설로 안내하는 일을 말한다. 또 경찰은 스토킹행위가 지속·반복될 우려가 있고 긴급한 경우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스마트폰 등 통신 금지 등이 그것이다. 경찰은 긴급응급조치 후 법원에 48시간 이내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스토킹범죄가 재발될 우려가 있는 경우엔 검찰이 법원에 잠정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잠정조치로는 가해자에 대해 ▲스토킹범죄 중단 서면 경고 ▲100미터 접근금지 ▲통신 금지 ▲1개월 구치소 유치 등을 할 수 있다.
스토킹범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흉기를 사용한 스토킹범죄라면 최장 징역 5년까지 늘어난다. 유죄판결 시에는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수강명령을, 집행유예 시에는 보호관찰·사회봉사를 가해자에게 함께 부과할 수 있다. 스토킹범죄는 반의사불벌죄다.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다.
그런데,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스토킹이 중범죄로 발전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다. 법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제일 먼저 거론되는 것은 반의사불벌죄 조항이다. 이 조항 때문에 가해자 측이 처벌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하여 합의를 종용하거나 2차 가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성범죄에서 친고죄 조항을 폐지했듯이 스토킹범죄도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한 스토킹을 '행위'와 '범죄'로 나누어 스토킹 행위를 지속적, 반복적으로 한 경우만 범죄로 보는 조항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한두 차례의 스토킹 행위 이후에도 바로 중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는 만큼 스토킹범죄를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수사기관의 응급조치나 긴급조치만으로 범죄를 막기는 역부족이므로 ▲온라인 스토킹 행위 구체화 및 처벌 신설, ▲잠정조치 시 전자장치 부착 방안, ▲피해자에게 접근금지신청권 부여, ▲피해자 신변안전조치 강화와 국선변호사 제도 도입 등도 보완할 점으로 지적된다.
스토킹범죄는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다. 그전에, 국가가 나서서 초기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더 큰 사고 발생을 막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최근 스토킹범죄 처벌법과는 별도로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7월부터 시행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