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좌도 아이들이 자은도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까닭은

신안군의 '이웃섬 탐험대' 프로그램 참가한 안좌도 학생과 학부모

검토 완료

노해경(maegi2)등록 2022.12.28 09:09
늦가을 아침,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인지 섬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평소보다 더 사나웠다.
 

전남 신안군 자은도 둔장해변 플로깅 지난 11월 13일 안좌도 에코신안마을학교 학생과 학부모가 이웃섬인 자은도 둔장해변에서 쓰레기를 주웠다. ⓒ 노해경

 
매서운 날씨에도 100여 명의 어른과 아이들은 꼿꼿했다. 전남 신안군 자은도 둔장해변 옆 두모체육공원 운동장에 선 이들 대부분은 손에 검은색 봉투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우리가 머문 자리에는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남지 않아야 합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에 사람들은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천연잔디 속을 샅샅이 더듬는 이들도 있었다. 운동장 이편에서 저편까지 이동한 사람들은, 울타리를 넘어 둔장해변 소나무숲과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으로 나아갔다.
 

둔장해변 플로깅 이날 신안 자은도 둔장해변은 100여 명의 플로깅 참여자들로 장관을 이뤘다. ⓒ 노해경

 
조깅이나 산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말하는 '플로깅(plogging)'으로 둔장해변은 장관을 이뤘다.
 
1시간 남짓 이어진 플로깅의 열기는 추운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뜨거웠다. 덕분에 간밤 밀물과 함께 해변으로 밀려들었던 쓰레기들은 말끔하게 치워졌다.
 
11월 13일 둔장해변 플로깅에는 안좌도 에코신안마을학교 학생과 학부모 19명, 전국에서 온 백패커(backpacker) 80여 명이 참여했다.
 

둔장해변 플로깅 플로깅에는 전국에서 온 백패커들도 함께 했다. 이들은 해변 옆 두모체육공원에서 12~13일 열린 '패커스 페스티벌'에 참여하러 온 패커스유니온 사람들. ⓒ 노해경

 
학생과 학부모들은 신안군의 '이웃섬 탐험대'로 자은도에 온 이들이었다. 백패커들은 두모체육공원에서 전날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패커스 페스티벌(packers festival)'에 참가하러 온 패커스유니온(packers union) 사람들이었다.
 
12~13일 안좌도 주민과 전국의 백패커를 이어준 것은 신안군. 코끼리협동조합과 패커스유니온 등이 주최하고 신안군이 후원하는 페스티벌에 마을학교 학생과 학부모가 현지 주민 자격으로 참가한 것이다.
 
플로깅 말고도 하루 전인 12일에는 운동회, 레크리에이션, 밴드 공연 등을 함께 즐기며 마을학교 사람들과 백패커들은 우정을 쌓았다.
 
플로깅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에코신안마을학교 박정원(안좌초4) 학생은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게 재미있었어요. 특히 모르는 사람들(백패커)과 함께해서 더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백패커 신유진 씨와 에코신안마을학교 아이들 청주에서 패커스 페스티벌에 참여하러 온 신유진(사진 가운데) 씨가 1박2일 동안 신안에코마을학교 아이들과 많은 정을 쌓았다. ⓒ 노해경

 
청주에서 페스티벌에 참여차 온 백패커 신유진 씨는 "아이들이 더 열심히 쓰레기를 주웠다. 어제부터 현지 주민과 함께 행사를 해서 좋았다.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정도 많이 들었다. 바다 가까이서 살지 않아서 바다를 보는 것도 너무 좋았다."라고 말했다.
 
신 씨는 전날 행사 때부터 마을학교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특유의 발랄함과 넘치는 사교성으로 아이들에게는 '텐션 이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플로깅이 끝나고 나서는 아이들이 건네준 옛 과자 선물에 감동해 동료 백패커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헤어지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에코신안마을학교 사람들과 백패커들의 만남 플로깅을 마친 마을학교 학생, 학부모와 일부 백패커들이 추억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었다. ⓒ 노해경

 
자녀 둘과 자은도에 온 에코신안마을학교 김희현 학부모는 "평소 주말이었다면 아이들은 집에서 휴대폰이나 TV나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나는 또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을 것 같다. 어제와 오늘 내가 제대로 힐링한 것 같다. 특히, 백패커 분들이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줘서 모두가 행복했다. 안좌도에서도 해변 플로깅을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늘 쓰레기 줍기 행사가 뜻깊게 남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자은도 아름다움 즐기고, 플로깅·자생식물 그리기 등 의미도 더해

신안군은 올해 초부터 '이웃섬 탐험대'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섬 주민들이 심리적으로 가장 먼 곳으로 꼽는 이웃섬의 방문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지금까지 신안의 많은 섬 주민들은 가장 가까운 곳인 이웃섬을 좀처럼 가볼 기회가 없었다고 말해 오곤 했다. 심지어 이웃섬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이는 뭍인 목포로 자주 왕래하는 것과는 대조되는 사실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섬 주민들에게 현실이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이웃섬을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해왔다는 것이다.
 

패커스 페스티벌 레크리에이션 시간 12일 안좌도 에코신안마을학교 사람들이 현지 주민 자격으로 패커스 페스티벌에 참가해 레크리에이션을 함께 즐겼다. ⓒ 노해경

 
'가까워서 언제든 가볼 수 있다'는 생각에 미뤄두다 보니 영영 가보지 못한 공간으로 이웃섬은 남아 있었다.
 
신안군에서 실시한 이웃섬 탐험대는 주민들에게 인기였다. 몇 차례 이웃섬 탐험대를 지원해오던 신안군은,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 지역문화 활력촉진 지원사업' 공모 선정을 계기로 프로그램을 본격화했다.
 
이번 안좌도 주민의 자은도 방문은, 지난 10월 8~9일 도초도 주민의 자은도 나들이에 이은 두 번째 이웃섬 탐방이었다.
 
이웃섬 탐방 첫날인 12일 오전, 에코신안마을학교 사람들은 두모체육공원에 내려 둔장해변을 거닐었다.
 

안좌도 이웃섬 탐험대의 자은도 둔장해변 놀이 12일 안좌도에서 버스를 타고 자은도에 도착한 에코신안마을학교 사람들이 둔장해변에서 낙서와 모래놀이를 하고 있다. ⓒ 노해경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둔장해변은 멀리 보이는 섬까지 물이 빠져 있었고, 왼쪽 산 너머에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걸어야 모두 걸어볼 수 있는 해수욕장 모래사장은 그대로 아이들의 도화지가 됐다.
 
한 학부모는 "여기 모두가 너희들 도화지다. 그림이든 글씨든 마음껏 그리고 써봐라."고 아이들에게 권했다.
 
아이들은 해변에서 나무 막대기를 찾아 '안좌초등학교' '에코신안마을학교' 등과 함께 자기 이름을 크게 썼다. 다른 아이는 여행 온 모든 사람들이 들어갈 만한 네모를 그리더니 거기가 집인 것처럼 사람들을 그려 넣기도 했다.
 
김정은, 김정민 학생과 김정훈 유치원생의 엄마인 이선주 학부모는 "다리 세 개 건너서 안좌도에서 왔다. 자은도는 안좌도랑 많이 다르고, 무엇보다 풍경이 아름답다. 안좌도에는 이런 해수욕장 해변이 없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듣는 파도소리가 너무 좋다."라고 웃었다.
 

텐트 치고 누워보기 에코신안마을학교 학생들이 패커스 페스티벌 주최측인 코끼리협동조합의 도움으로 두모체육공원에 텐트 5동을 치고 놀았다. ⓒ 노해경

 
오후에는 코끼리협동조합의 도움으로 텐트 5동을 두모체육공원 운동장에 폈다. 먼저 장소를 잡고 원터치로 펼쳐지는 텐트를 세운 아이들은, 팩으로 텐트를 땅에 고정했다. 이어 자신들이 친 텐트에 들어가 누워보며 자신들만의 아지트인 것처럼 즐거워했다.
 
이후부터 저녁까지는 페스티벌에 참가해 전국 백패커들과 함께 행사를 즐겼다. 천성규 MC의 사회로 진행된 레크레이션과 운동회에서 아이들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백패커들의 양보 속에 우승 상품을 싹쓸이하기도 했다.
 
김석빈(안좌초3) 학생은 사회자에게 지지 않아야 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모두를 놀라게 했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게임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패커스 페스티벌 운동회 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신안에코마을학교 사람들과 백패커들이 함께 즐긴 운동회에서 아이들이 거의 모든 상품을 따갔다. ⓒ 노해경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보는 '메이커 프로그램' 체험 시간도 이어졌다. 실뜨기 기계로 짜는 니트 비니 모자, 종이천과 지퍼, 재봉틀로 만드는 사코슈백, 콘크리트못과 로프로 제작하는 콘크리트팩 체험에서는 모두가 호기심 많은 아이가 됐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비니 모자 만들기에 큰 관심을 보였고, 짧은 시간 3~4개의 비니를 짜서 아이들에게 씌워주기도 했다.
 
저녁시간에는 공연무대가 이어졌다. 싱어송라이터 조수현 등은 '내사랑 내곁에', '여수밤바다'를 개사한 '신안밤바다' 등을 불렀다. 팝페라 가수 <싱앤싱어즈>는 'Il Mondo'와 '친구여' '세월이 가면' 등을 불러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패커스 페스티벌 밴드 공연 12일 저녁, 장대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에코신안마을학교 사람들과 백패커들은 밴드 공연을 들으며 낭만을 즐겼다. ⓒ 노해경

 
어둠 속에서 야외 천막을 두드리는 빗줄기 소리는 페스티벌 참가자들에게 낭만 기폭제가 됐다.
 
이웃섬 탐험 이틀째인 13일 플로깅을 마친 아이들은, 오후에 뮤지엄파크 도서자생식물연구센터로 옮겨 신안 자생식물 컬러북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조은솔·김지선 강사의 '신안 자생식물 소개'와 '세밀화의 이해' 등 설명을 들은 마을학교 학생·학부모들은, 컬러링북 2장씩을 색칠했다. 신안군은 이렇게 주민들이 그린 세밀화를 모아 그림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신안 자생식물 컬러북 그리기 13일 플로깅을 마친 에코신안마을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은 자은도 뮤지엄파크로 자리를 옮겨 신안 자생식물 컬러북을 색칠하는 시간을 가졌다. ⓒ 노해경

 
컬러링북 채색을 끝으로 안좌도 에코신안마을학교 사람들의 자은도 이웃섬 탐험은 막을 내렸다. 뮤지엄파크 주차장에서 이웃섬 탐험대들은 안좌초등학교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차에서 이들은 힐링과 재미, 의미라는 단어들을 써가며 대화로 자은도 방문을 대화로 갈무리하고 있었다. 1박2일의 빠듯한 일정에 피곤도 잊은 채였다.
 
마을학교 김세령(안좌초6) 학생은 "학교에 6학년 친구들이 9명이 있는데, 이번 여행은 저 혼자 왔어요. 여러 프로그램도 하고, 다른 사람들(백패커)하고 어울리니까 재미있었어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웃섬 탐험대를 추천해주고 싶고, 다음에는 도초도에도 가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