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시도지사와 교육감의 러닝메이트제가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대통령실 제공
교육감 직선제 폐지 논의의 판이 커졌다. 국민의 힘 정우택 의원과 김선교 의원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 법안을 발의하였고, 윤석열 대통령도 국정과제 점검 회의에서 시도지사와 교육감의 러닝메이트제가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교육부도 정개특위에 러닝메이트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반대했던 교육부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입장을 바꿨다.
실제론 시도지사의 교육감 임명제
먼저 정우택 의원과 김선교 의원의 발의안을 살펴보자.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과 공직선거법안을 보면 말이 좋아 러닝메이트제이지 정확히는 시도지사의 교육감 임명제이다. 시도지사 후보자가 후보자 등록을 신청할 때 지명한 교육감 후보자 서류를 포함하고 이를 선거 과정에서 알리게 된다. 시도지사의 선거 공보물에 교육감 후보자로 누구를 정했다고 밝히거나 교육 공약이 일부 포함되는 방식이 된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시도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발의안에는 크게 3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후보자의 선거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밝힌 자료에 의하면 교육감 후보자 1인 평균 지출액은 10억 6천여만 원인데, 시도지사 평균 지출액이 8억 9천 3백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후보자의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감 후보자가 정당의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당연한 결과이다.
둘째, 관심 부족에 의한 무효표가 발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밝힌 교육감 선거 무효표는 90만 3249표인데 시도지사 무효표는 35만 828표다. 시도지사보다 2.6배가량 많았다. 시도지사는 정당과 연관하여 투표가 진행되지만 교육감 후보는 그렇지 않다. 이름만으로 투표를 해야하다 보니 관련 정보를 모르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음을 시사한다.
셋째, 교육자치와 일반자치의 분리 현상 극복이다. 교육감과 시도지사의 교육철학 차이로 인한 긴장과 갈등 사례가 발생한다. 교육자치와 일반자치 통합에 대한 지속적 요구다.
직선제 폐지 주장의 다섯 가지 문제점
이러한 직선제 폐지 주장의 문제는 무엇일까? 우선은 헌법 31조 4항과 교육기본법 제5조에서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차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정당의 경선 과정과 지원을 거쳐 당선된다. 통상 정치를 이야기할 때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를 동시에 사용한다. 교육 영역은 상대적으로 정당과 정치의 요소가 덜했는데 교육의 정당 내지는 정치의 예속화 현상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긍정 의미보다는 부정 의미가 강해진다.
교육 과정이나 학생들의 발달단계, 교육 행정의 특성, 장학(獎學)의 의미에 대해서 충분한 학습과 이해가 부족한 시도지사가 본인이 임명한 교육감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을 때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거부하기 쉽지 않게 된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에 앞장서서 반대했던 사례를 떠올려보자. 직선제 교육감들은 무상급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갈등, 대화와 토론, 설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임명제 교육감들은 시도지사의 지시를 따라야 할 뿐 구조적으로 소신을 펴기 어렵다.
그러한 문제가 무상급식뿐일까? 예컨대 시도지사가 낡은 교육철학을 가지고 앞장을 서면 교육감도 따라야만 한다. 교육감은 도청의 교육국장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아직도 서울권 명문대에 몇 명을 보냈느냐에 관심을 두는 지자체장도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지역 소멸을 걱정한다.
둘째, 교육 특성에 대한 몰이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교육은 일반 행정과 달리 교육과정, 학생들의 발달단계, 전인적 성장을 다룬다. 예컨대 학력이 떨어지는 학교와 학생에 교육행정은 오히려 더 많은 지원을 하기도 한다.
이는 일반 행정의 논리와 문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특수하고 고유한 영역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효율성과 시장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즉, 예산을 투입해 어떤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시장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육에 대한 몰이해는 자칫 외적 성과를 중시하는 정책과 사업, 프로그램에만 신경을 쓰게 만들 수 있다.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교육과정은 무관심의 영역으로 치부될 수 있다. 지자체장의 교육에 대한 몰이해 내지는 무관심으로 어려움이 가중된 사례도 적지 않다. 지자체장의 과거 문법에 사로잡힌 철학 내지는 정치적 득실로 교육 정책 판단이 내려지는 것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다.
셋째, 민주주의 관점에서 직선제 폐지는 문제가 있다. 교육감 직선제는 지난한 역사의 과정을 거친 산물이다. 임명제나 간선제보다 직선제가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한다. 경제적 효율성이나 정책 통일성, 일관성의 관점에서 보면 임명제나 간선제가 더욱 적합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를 희생하고서라도 민주주의 관점에서 직선제가 갖는 의미가 크다. 유권자가 다양한 후보들을 판단하면서 누가 적임자이고 어떤 공약이 국가, 지역, 교육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는가를 고민하고, 숙의와 공론의 과정을 거쳐 함께 책임을 지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닌가?
학부모와 주민이 투표권을 가지고 교육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최적의 후보를 고를 기회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 교육감 직선제가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한국교총 주도로 헌법 소원을 냈는데 헌법재판소는 본안을 다루지 않고 각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