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채 파업이 막을 내렸다. 화물연대는 11월 24일부터 안전운임제 유지와 적용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으나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을 보장하여 과적, 과속, 과로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이 파업 패배의 현장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의 기조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친기업 반노동 정치가 펼쳐질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취임 이래 총체적인 무능과 무위로 낮은 지지율에 머물던 윤석열 정부는 노동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신속하고 전방위적인 자세로 대응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첫째, 윤석열 정부는 여성, 환경, 외교에 이어 노동에 대한 대대적인 백래시(진보적인 사회, 정치적 변화에 반발하는 심리나 행동)에 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16명의 판검사 출신과 54명의 관료(특히 기획재정부 출신 15명 포함) 출신이 대통령을 포함한 100대 요직에 포진해 있는 정부이다. 판검사 출신은 국민 누구라도, 특히 정치적 반대파를 지목해 범죄자로 만드는 정치 문법에 단련된 사람들이다. 경제 관료 출신들은 재정과 예산권을 무기로 경제 효율성이라는 기치 아래 기업 중심의 국정 운영을 추구한다.
이 두 세력이 힘을 합쳐 친기업 반노동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화물연대의 파업을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규정하고, 나라 경제를 망치는 불법 행위라며 적대적으로 대처한 것은 이런 윤석열 정부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6월에도 화물연대는 동일한 요구 사항을 갖고 파업에 나섰는데 이때 화주 단체를 대표했던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실 정책기획수석에 임명되어 일하고 있다.
이런 정부에게 노동과 복지와 같은 사안에 대한 사회적 대화와 타협, 포용은 아예 기대할 수 없다. 이번 파업 중 화물연대와 교섭을 해야 하는 국토교통부는 화물연대와 고작 2차례 만났을 뿐이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시간은 채 3시간이 안 됐다.
반노동 프레임으로 왜곡 이미지 씌워
둘째, 이런 친자본 성향의 정부는 보수 언론 및 극우 온라인 논객들과 손잡고 반노동 프레임으로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에 대한 요구를 매도해 버린다.
반노동 프레임은 노조와 노동자들의 집합행동을 빨갱이,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기득권(소위 귀족노조), 떼쓰기, 공갈, 협박을 일삼는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집단(소위 민폐노총)이라는 부정적인 언어를 반복적으로 동원해 왜곡된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전술이다. 이런 수사의 반복과 강화를 통해 실제 노동자들이 처한 부당하고 위험한 현실을 숨겨버리고, 이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정당성을 부정한다.
이렇게 부당한 노동 현실에 대한 고발을 지워버린 자리에는 노동운동에 대한 강경 탄압의 나팔만이 울리고, 노동을 탄압하고 회유하려는 자본의 반격이 조직된다. 예컨대, 화물연대 파업이 시작되자 일부 화주들은 화물연대를 탈퇴해야 일감을 준다는 조건을 걸어 회유, 협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화물연대 조합원을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라며 강제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다. 이런 반노동 프레임에 맞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적정한 운임비를 받아야 하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집합행동에 나설 수 있는 민주사회의 기본권을 가진 시민이라고 말해 주는 곳은 많지 않다.
셋째,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탄압은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기조의 서막일 뿐, 노동운동을 불법 범죄로 적대시하고 노동 규제를 완화하는 백래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화주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저임금 구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안전운임제 자체를 원점에서 논의하여 백지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대통령은 연일 노조의 불법을 단호히 처벌하겠다고 엄포하고 있고, 정부와 화주들은 화물연대를 물질적으로 파괴하려 들 것이다.
파업으로 인한 피해액을 집산하여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노동조합과 노동자에 대한 수십, 수백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소송은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집단을 돈으로 목조이는 악질적인 노동탄압 수법이다. 화물연대 파업과 종료를 둘러싼 시기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일정 정도 올라가면서, 정부는 더 자신감을 갖고 다른 노동법규도 개악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국민 51% "노동계 파업 대응 잘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