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라이브 영상 중 한 장면.
유튜브 이랑 Lang Lee 갈무리
가수 이랑은 올해 열린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식에서 자신의 곡인 '늑대가 나타났다'를 공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해당 곡의 공연도 행사에 출연도 할 수 없었다. 그 과정이 석연치 않다.
'늑대가 나타났다'를 공연 목록에서 빼달라는 행정안전부(행안부)의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공연 2개월 전부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연습에 매진한 가수와 연출자가 이를 승낙하기는 어려웠다. 요구를 거절한 후 공연자와 연출자가 교체됐다. '검열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연출을 맡았던 강상우 감독은 재단에서 '(늑대가 나타났다를 빼라는) 지시를 수행하지 않으면 재단의 존립이 위험하다'는 말을 했다고 언론에 전했다. 행안부는 '미래 지향적인 밝은 느낌의 기념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뿐, 검열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태의 전말은 짐작만 가능할 뿐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이 정부가 얽힌 일은 늘 이런 식이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놓고 정부의 행보가 노래를 현실에서 완성했다고 비판했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봉기 혹은 혁명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주체는 가난하고 핍박받는 약자들이다.
자식이 죽은 가난한 여인, 부자들에게 좋은 빵을 모두 뺏긴 걸 알아버린 굶주린 이들, 일하고 걱정하고 노동하고 슬피 울며 마음 깊이 웃지 못하는 예의 바른 사람들. 이들이 성문 앞으로 모이자 성에 사는 사람들은 마녀·폭도·늑대·이단이 나타났다고 외친다. 그리고 성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잘것없는 약자들이 감히 성문으로 걸어가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노래가 아주 불편하게 여겨졌을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결과는? 그들은 노래처럼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늑대라고 지목한 이들을 내쫓고. 이 노래를 거부한 사람이 대중을 어떻게 보는지 잘 알겠다.
장애인 앞 예외 없이 굳게 닫힌 문
지난 14일에는 서울시 지하철 4호선 한 대가 삼각지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서울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시위가 벌어지는 역을 무정차 통과하는 방안을 검토한 지 며칠만의 일이다.
이런 검토의 배경에는 대통령실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교통공사는 자사의 SNS 계정과 휴대폰 앱인 '또타지하철'을 통해 이 같은 조치가 '열차 지연으로 인한 불편을 감소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빠르게 알렸다.
하지만 해당 계정을 팔로우하거나 앱을 사용 중인 사람은 알 것이다. 다른 일에는 이들이 자주 잠잠하다는 것을. 일례로 얼마 전 내가 탄 서울 2호선 열차가 출입문 고장으로 출발이 수십 분간 지연되는 일이 있었다. 결국 열차가 신도림역에 도착했을 때 평소 해당 시간대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인파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의 SNS나 앱은 조용했다. 한 명이라도 저 인파를 피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