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업데이트된 CIA 월드 팩트북 홈페이지에 게시된 지도를 보면,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있다. 한국의 서쪽 바다는 황해, 남쪽 바다는 동중국해로 돼 있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이 온통 외국 바다 명칭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CIA 월드팩트북
업그레이드 CIA 지도에 표기된 일본해와 리앙쿠르
민간단체 반크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CIA 지도에 표기된 일본해를 동해로 바꿔달라고 촉구해왔다. 하지만, CIA는 이 표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지도를 내놓았다. CIA 월드 팩트북 홈페이지에 게시된 지도를 보면,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있다. 한국의 서쪽 바다는 황해, 남쪽 바다는 동중국해로 돼 있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이 온통 외국 바다 명칭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3·1운동이 벌어진 1919년에 개최된 국제수로회의를 계기로 일본해 표현이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하지만, 2020년 11월에 국제수로기구(IHO)가 바다 명칭을 번호로 표기하는 방안에 합의했기 때문에, 미국이 일본 눈치를 덜 보고 명칭 변경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도 미국은 성의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 놓인 바다의 명칭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양국간 어업 협상이나 어민들의 기싸움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양국관계 전반이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일본에 편향된 태도를 시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핵심적인 세계전략 중 하나는 한·일 양국을 앞세워 북한과 중국·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이다. 식민지배 문제로 등을 돌린 두 나라를 앞세워 세계전략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한·일 간의 감정 대립을 잘 알 수밖에 없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로 한미일 협력체제를 추구해온 미국이 동해 명칭이 두 나라 사이에서 얼마나 민감한지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일관되게 일본해 명칭을 고수하고 있으니, 한·일 간의 공정한 중재자가 될 수 있는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CIA 지도 속의 일본해 표기 바로 밑에 리앙쿠르암(리앙쿠르 록스, Liancourt Rocks)이라는 표기가 있다. 언뜻 보면 중립적인 표현 같지만, 여기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면 이 역시 공정한 용어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지난 6월 동북아역사재단이 발행하는 <영토해양연구> 제23호에 수록된 유미림 한아문화연구소장의 논문 '리앙쿠르 록스 명칭의 전승과 잔존의 역사적 배경'에 정리된 바에 따르면, 리앙쿠르 표현이 사용되기 전에 서양인들이 사용했던 이름이 있었다. 1787년에 동해를 항행한 프랑스 부솔호의 탑승자인 천문학자 다줄레는 독도를 중국어 발음인 챵찬(Tchiang-chan)으로 표기한 지도를 갖고 있었다.
리앙쿠르라는 이름이 나온 계기는 조선 헌종 때인 1849년에 있었다. 이해 1월 독도의 존재를 확인한 프랑스 포경선의 명칭이 이 섬의 서양 이름이 됐다. 한국에서는 이 명칭이 익숙하지 않지만 일본은 다르다. 일본은 19세기에도 이 표현을 사용했고 20세기 들어서도 한동안 그랬다. 위 논문에 이런 대목들이 있다.
"일본은 1905년 이후에도 한동안 리앙쿠르 열암으로 부르거나 다케시마와 병기했다."
"일본은 <환영 수로지>에서 '리양코루트 열암'을 표제어로 삼았고, 이는 일본이 1905년 독도를 불법으로 편입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전 세계의 수로를 다룬 <환영(寰瀛) 수로지>가 편찬된 것은 1880년대다. 이때도 일본인들이 독도를 리앙쿠르암으로 표기했다는 사실은 이 표현이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익숙했겠는지를 보여준다.
리앙쿠르가 일본 대중들 사이에서도 사용됐다는 점은 전 독도재단 비상근이사인 정태상 독도연구포럼 대표의 <독도문제의 진실>에 소개된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1901년 일본의 신문·잡지에서 갑자기 '앙코'라는 섬이 동해에 등장한다. 그것도 지도에도 없는 새로운 섬을 발견했다는 것이다"라며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은 흑룡회"였다고 말한다.
극우단체 흑룡회가 발간한 1901년 3월호 기관지 <회보>에서 '앙코섬 발견'이 크게 보도됐다고 위 책은 설명한다. 이 앙코가 바로 리앙쿠르다. 극우단체의 대중 홍보에 '앙코' 표현이 활용됐으니, 당시 일본인들에게 다케시마보다 앙코가 더 익숙했으리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