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정부가 한국전력공사와 철도공사, 석유공사 등 14개 공공기관을 재무위험기관으로 분류했다. 수익성이 악화하거나 재무구조 전반이 취약한 이들 기관을 특별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경색되고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적자가 자사의 자금경색을 넘어 전체 자본시장 경색에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최우량 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한전이 채권시장에서 고금리로 시장자금을 빨아들이자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즉 한전의 적자는 자금시장으로 확대되어 '고금리·고물가·고환율' 삼중고에 시달리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적자로 운영자금이 급한 한전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올 10월까지 한전채 발행 규모는 23조 원을 넘어섰고, 한전채 순 발행액은 전체 신용채권의 1/3 이상이다. 빚으로 자금을 충당하던 한전은 지난 10월 1조 2000억 원의 한전채를 발행하려 했지만 응찰액은 이에 미치지 못하였고 목표한 규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5900억 원만을 채권시장에서 조달했다. 한전채가 유찰된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다.
한전 적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높아지자 국회가 나서서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국회는 지난 11월 24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2배인 한전채 발생한도를 5배까지 확대하는 한전법 개정안을 상임위에서 통과시켰다. 그리고 채권 발행 규모 확대와 함께 은행 차입을 통해 재원 다변화로 한전의 재무위기 개선책을 제시했다.
안타깝게도 국회가 제시한 처방은 한전 적자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한전 적자의 원인은 '전력을 비싸게 사서 싸게 팔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구조적 한계인 '경직된 소매요금 결정구조' 하에서 에너지 가격이 지금처럼 높게 유지된다면 '한전법 개정안'에 의해 확대된 채권발행 한도가 오히려 한전 적자를 확대시키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전 적자 규모 뒤에 숨겨진 진실
한전의 2022년 1~3분기 누적 영업적자액 21조 8000억 원은 상장기업 영업이익 상위 5위 기업 가운데 SK하이닉스, 포스코와 현대차의 2021년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의 합계 20조 4000억 원보다 크다. 한전의 적자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단적으로 말해 준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발전공기업이 한전에서 분리된 2001년 이후 한전이 적자를 기록한 것이 2008년, 2011년, 2012년, 2019년, 2021년 다섯 차례이다. 그리고 이 5개 연도는 모두 유가를 비롯한 발전용 연료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시기였다.
최근인 2021년에는 코로나19 감염위험 감소에 따른 에너지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 공급의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약 50% 급등하였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한전은 작년 3분기에 영업손실을 기록하였는데, 2011년 분기 결산을 시작한 이후 한전이 3분기에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5분기 연속 영업적자와 함께 한전의 부채는 1년 전보다 28조 5000억 원 급증하여 올 6월 말 기준 165조 8000억 원으로 전체 상장사 중 8위이고, 금융 부문을 제외한 산업 부문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6월 말 현재 한전의 자산은 1년 전보다 약 20% 감소한 55조 4000억 원으로 상장사 순위에서도 전년보다 3계단 하락한 6위에 머물렀다.
만약 한전의 적자를 현상태로 둔다면 한전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지게 될 것이다. 단순한 계산이지만 한전이 전력 1킬로와트시당 50원의 손해를 본다면, 작년 전력판매량 533TWh 기준으로 한전은 연간 26조 원 이상의 적자를 보아야 한다.
반면 한 달에 300kWh를 소비하는 가정은 한전의 적자로 인해 한 달에 1만 5천 원, 일 년에 18만 원의 이득을 본다. 2021년 전력 다소비 상위 30개사가 전년과 동일한 102TWh의 전력을 올해에도 사용한다면 이들 30개 기업은 5조 1000억 원의 추가 이득을 한전 덕분에 누리게 된다.
한마디로 한전의 적자는 가계에는 '에너지 복지'로, 기업에는 '보조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던 것이다. 한전 적자를 한전만의 문제로 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의 세금 보전도 탈원전 정책 영향도 원인 아니다
한전의 적자가 커지자 원인에 대한 여러 오해가 퍼지고 있다. 먼저 일부에서는 한전의 적자를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해준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한전의 적자 보전을 위해 세금을 투입한 유일한 사례는 2008년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6680억 원을 지원한 경우 단 한 차례뿐이다. 당시 한전의 연간 적자 규모는 약 2조 8000억 원이었다.
다른 오해는 탈원전 정책이 적자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탈원전 자체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전력 수요나 연료비와 같은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원전 가동률 감소로 발전이 줄어든 양만큼 석탄이나 LNG 발전량이 증가하여야 한다.
여기서 LNG 발전량이 증가해야 한다면, 기존에 발전하지 않았던 LNG 발전기 가운데 발전비가 가장 낮지만 이미 전기를 생산하고 있던 LNG 발전기보다는 비용이 높은 발전기가 추가로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경제급전 원칙). 그리고 추가로 발전을 시작한 LNG 발전기를 기준으로 도매시장 가격이 정해져 전력시장가격은 상승하게 되지만, LNG 발전기간 발전비 차이는 한전의 막대한 적자를 설명할 정도로 크지는 않다.
한 가지 가능성은 원자력 발전량이 줄어들어 발전비가 높은 LNG나 유류 발전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석탄(혹은 LNG) 발전에서 정해질 전력시장가격이 발전비가 높은 다른 연료인 LNG(혹은 유류) 발전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 경우 원자력 발전 감소에 따른 전력시장가격 인상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2021년과 2022년 10월말까지 시간대별로 전력시장가격이 정해진 전체 횟수 가운데 LNG 발전에서 전력시장가격이 정해진 비율이 각각 90%와 86%로 탈원전 정책을 실시한 문재인 정부 이전인 2010~2016년 평균인 87.3%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 발전비가 가장 비싼 유류 발전소에서 전력시장가격이 정해진 비율은 2021년과 2022년 각각 0%와 1%로 2010~2016년 평균인 9%를 크게 밑돌았다. 결국 탈원전 정책이 전력시장가격 상승과 한전 영업적자에 영향을 일부 줬을지라도, 탈원전이 한전 적자의 주된 요인이 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긴급SMP상한제는 임시방편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