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후정의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면 문제에 공감하고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낯설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잘 모를 때는 이러한 전략이 필요했다. 다소 과격하거나 선정적으로 보이더라도 많은 기후활동가들이 '위험성'과 '절박성'을 알리는 데 집중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정책은 결국 국가와 지자체 몫이다. 에너지정책과 교통정책을 바꾸지 않고 절전이나 대중교통 타기 캠페인만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국민의 인식이 바뀌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후위기 시대 정책을 바꿀 정치권의 역할이 필요하다. 거대 자본이 움직이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성이 작동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세상에서 정치인들의 선한 행동만을 기대하는 것은 그저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독일을 비롯해 전 세계에 녹색당 같은 기후·환경 문제를 다룰 정당이 만들어지고, 미국의 선라이즈 무브먼트 같은 기후정치 행동을 촉구하는 청년 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모두 이러한 맥락이다. 장외에서 심판만 보거나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는 수준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직접 출마하거나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거라는 전쟁터에서 기후위기를 갖고 싸운다. 그리고 그 결과 기후 정치인들이 의회에 진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많이 다르다. 오랫동안 기후·환경운동은 순수한 것이고, 정치와 시민사회 운동은 서로 다른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선거 때마다 관행처럼 각 정당의 공약을 평가하지만,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일은 결코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우려해 매번 복수의 정당, 정치인에 대해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며 평가할 뿐이다.
과거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시민단체의 공약 평가가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현재는 그마저 예전 같지 않다. 시민사회운동 내부에서조차 '공약 평가 무용론'이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다급한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회 의제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 '정치 세력화'로까지 연결시키는 일은 사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노동자·민중의 정치 세력화'나 '여성의 정치 세력화'라는 말은 수십 년째 매우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종 혹은 종교계의 국회 진출 또한 매우 자연스럽다.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토건, 금융, 핵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계도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의제를 관철하기 위해 활동한다. 하지만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거리두기'가 관행처럼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후 선거', '기후 대통령'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 결과 '기후 대선운동 본부'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큰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수의 기후정의 운동 진영은 이와 같은 흐름에 회의적이었다. 3개월 간격으로 2번의 선거가 이어지는 정치 무대에서 기후정의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는 했지만 대중적인 기후선거 캠페인이나 지역별 출마, 지지선언 등은 각 정당과 후보자 캠프의 몫이었다.
특히 대통령 선거와 달리 지방선거는 지역 차원의 기후공약을 펼치기 좋은 무대였지만 기후 후보도, 기후 공약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국에서 약 1만 명의 후보가 출마한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본인이 '기후 후보'라고 칭했던 후보는 정당 전체를 통틀어 50명도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 후보의 숫자를 세고, 공약을 평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기후 정치인, 혜성같이 나타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