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승패1997년 8월 23일, 4대 1로 앞선 9회 초 2사 1,2루 2스트라이크 1볼에서 쌍방울의 대타 장재중이 4구째 낮은 공에 헛스윙을 하자 심판은 아웃 선언을 했고, 경기가 종료되면서 중계방송도 끝났다. 하지만 마지막 공은 바운드된 공이었고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라는 김성근 감독의 항의를 무시할 방법이 없었지만 포수 김영진(사진)은 그 공을 관중석에 선물로 던져준 다음이었다. 재개된 경기에서 쌍방울은 5점을 더 뽑으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고, 삼성 팬들은 주말이 지나서야 신문을 통해 '승'이 '패'로 뒤바뀐 사실을 알게 됐다.
삼성 라이온즈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프로야구 경기를 직접 관전할 기회는 흔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나 올스타전 같은 특별한 경기가 아닌 한 주중 경기를 TV를 통해 중계방송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공중파 채널에서 중계방송을 하긴 했지만 모든 팬들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즐길 수는 없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주말 중계방송도 오후 5시 저녁 뉴스 이전까지는 마쳐야 했기 때문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8회 말이나 9회 초쯤 화면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정규방송 편성 관계로 중계방송을 마칩니다'라는 자막을 지켜보면서 탄식해야 하는 일은 대개 피할 수 없었다.
넉넉히 이긴 줄 알고 지내던 경기가 몇 년이 지나서야 극적인 막판 역전 승부의 전설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는 일도 종종 일어났던 이유다. 창설 이후 적어도 20여 년간 야구팬들은 프로야구 정규리그의 경기들을 TV 중계방송을 통해 결말까지 온전히 지켜본 경우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직접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볼 수 없는 팬들은 50원이나 100원쯤의 통화 요금 지출을 감수하고라도 700 전화 사서함 서비스를 통해 중간중간 경기 진행 상황을 확인하거나, 아니면 밤 9시 40분쯤 TV 스포츠뉴스를 통해 경기 결과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마저 놓친다면 다음 날 아침에 배달되는 조간신문의 스포츠면을 확인해야 했는데, 그나마 경기가 연장전에라도 돌입해서 신문 조판 마감 시간까지도 마무리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경기에 관한 내용만 빠져 있는 기사를 앞뒤로 다시 되짚어 읽으며 어리둥절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야구팬이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스포츠신문을 사거나 선반 위에서 줍기라도 해야 했다. 종합일간지에는 전날 경기의 결과와 구단 순위, 그리고 다승과 타율 부문 5위나 10위 정도까지의 개인 순위 정도가 실리는 데 그쳤지만, 스포츠신문에는 각 경기의 회별 기록과 선수별 기록 그리고 부문별 상위 20위까지의 자세한 기록이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열성적인 야구팬이라 해도 경기의 승패와 구단의 순위 이상의 정보를 챙겨서 기억하기는 쉽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런 환경에 있었다.
야구를 볼 수 없던 시대의 야구팬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 사용자가 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정보량이 충분하지 못했지만 스포츠뉴스 시간을 놓치거나 다음 날 조간신문이 배달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경기 결과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1999년 4월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초고속인터넷망인 ADSL 서비스가 상용화되어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면서 정보의 규모가 달라졌다.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포털 사이트들이 경쟁적으로 대중문화 관련 콘텐츠를 보강했고 그 과정에서 프로야구 관련 정보와 커뮤니티도 확대되었다.
2003년에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프로야구 문자중계를 시작하면서 각자 경기 관전에만 집중하던 야구팬들이 댓글 창에서 함께 응원이나 토론을 하거나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VOD와 하이라이트 서비스가 시작되어 경기를 보지 못한 이들도 중요한 경기 장면을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됐고, 수많은 진기명기와 기묘한 실책과 실수들이 동영상과 사진으로 저장되고 유포되었다.
이전까지 필력 좋은 기자들의 묘사를 통해 전해지던 '전설'들이 이제 생생한 영상과 재치 넘치는 네티즌들의 촌평들이 결합된 형태로 대체되고 양산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