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보이는 신발의 색. 때론 그 당연함이 힘들게 할 때가 있었다.
김승재
하찮지만 하찮지 않은 것들
시력을 잃고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되면서부터 이렇게 정말 사소한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멀쩡하던 컴퓨터가 멈췄다. 화면에는 경고 메시지가 떠 있고 확인 단추만 누르면 되는데 시각 장애인용 음성 프로그램까지 멈췄다. 나는 멍하니 누군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도서관 장애인 열람실. 내 방처럼 혼자 여유 있고 편하게 이용해서 좋다. 그러나 케이스에 넣으려던 무선 이어폰 한 짝을 떨어뜨리고 5분 넘게 바닥을 손으로 더듬어 보지만 얄궂게도 그건 찾아지지 않는다.
깔끔한 최신 공중화장실. 볼 일을 마치고 이제 물만 내리면 되는데 흔히 있는 물통도 없고 물내림 단추도 없다. 당황해서 변기 여기저기를 더듬고 벽까지 더듬어 찾아보는 사이 밖에서는 누군가가 연방 노크를 해댄다.
홀로 남은 가을 저녁. 제법 굵직한 가을비 소리에 단풍과 더불어 내 마음마저 차분히 젖어 들면서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난다. 지갑에는 돈도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편의점도 있지만, 그날따라 가족 모두 외출 중이다. 갑자기 막막하다 못해 비참해진다.
열 개 아니 백 개라도 얘기할 수 있다. 모두 하잘것없고 하찮은 것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것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렇게도 사소한 것들은 언제나 내 곁에 그림자처럼 있었지만 남의 도움은 그렇게 항상 내 곁에 있을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한때는 짜증도 냈고, 한심한 내 모습에 절망도 했다.
그런데 뒤늦은 깨달음이랄까, 가만히 그런 나를 되돌아보니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옛날 황제나 왕 곁에는 언제나 환관이나 시녀가 있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나 잠을 잘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용변을 보거나 남녀 간에 은밀한 일을 행할 때조차 그들 곁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내가 이런 황제나 왕의 위치에 있다면 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난 그럴 수도 없고 결단코 그럴 생각도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하잘것없고 하찮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것들은 내 일상에서 너무도 소중하고 필요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보지 못하는 눈만 탓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투덜대고 신세타령만 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근본적으로 태도를 바꿔야 한다.
흔히 말하는 '당연하다'는 것은 때에 따라 무척 상대적이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그 차이가 확연하다.
당연히 알았을 갈색 신발, 당연히 눌렀을 확인 단추, 당연히 눈으로 찾았을 떨어진 무선 이어폰이나 변기 물내림 단추, 당연히 우산 하나 들고 나가서 사 왔을 막걸리지만 내겐 당연한 게 아니다. 너무 어렵거나 때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확실한 해결책은 아닐지 모르지만, 의외로 간단한 대안이 있다. 옛날 생각은 이제 그만 그리고 미리미리 확인하고 새로운 건 그때그때 배우면 된다.
신발이나 옷 색깔은 외출 전에 확인하고, 음성 프로그램이 동작을 멈췄다면 윈도 자체 음성 기능 사용법을 배워서 이용할 수 있다. 낯선 화장실이나 시설을 이용할 땐 구조를 확인하고 필요한 건 배우면 된다. 혼자 갈 일이 많을 것 같은 곳은 가는 길을 익혀두고, 편의점 같은 곳에서는 주인이나 점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될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떨어뜨린 물건을 찾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것도 있겠지만 미리 확인하고 끊임없이 배울 일이지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한참 떠들고 보니 우습게도 만사에 초연한 성인군자 같다. 눈치챘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당연히 오버하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날에도 수백 아니 수천 번은 오갔을 부엌 식탁 의자를 걷어차서 엄지발가락 발톱이 깨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혼자 해야 하는 사소한 것 그러나 내 일상에선 너무도 소중한 것을 배우고 익힐 수밖에 없기에 오버라도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이 혼자 할 수 있는 걸 돕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다. 나 같은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도 참으로 많은 것들이 제공된다. 일반 폴더폰을 사용하다가 처음 스마트폰을 접했을 때 아무 느낌 없는 매끈한 화면에 황당함을 넘어 막막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오래되지 않아 기쁨과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내장된 시각 장애인을 위한 기능을 실행시키고, 한 손가락 혹은 두 손가락 심지어 세 손가락과 네 손가락까지 사용해서 화면을 터치하거나 좌우 또는 위아래로 쓸다 보면 내 능력이 닿는 한 맘껏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가 있었다. 거기에 음성 인식 기능까지 더해지니 오히려 기존 폴더폰보다 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대비로 화면을 조정하고 아무리 글자 크기를 키워도 점점 보기가 어려워지는 컴퓨터 화면에 절망할 무렵, 시각 장애인용 음성 프로그램인 '센스 리더'를 사용하면서 내 컴퓨터 생활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비록 마우스 대신 키보드만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해서, 'Contl + C'나 'Contl + V'와 같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윈도우 단축키는 물론 화면 전환, 인터넷 검색, 편집창 이동 메뉴 선택 등 마우스 클릭 한 방으로 간단하게 해결하던 모든 걸 키보드 단축키를 외워서 사용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이렇게 맘껏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놀람이요, 기쁨이었다.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끔 이용하는 도서관 장애인 열람실 내부에 책상은 어떻게 배열돼 있으며, 의자나 책장 등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우리 집 내부 구조와 가구 배치는 물론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구조까지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배우고 익힐 게 너무 많았다.
수많은 앱이나 프로그램은 화면 디자인이나 효율성을 높이려고 모두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메뉴나 실행 단추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내가 원하는 걸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내가 노력할 일이지 누굴 나무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