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지슨 보우 브루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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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2년 런던 템스강 한구석에서 양조장을 시작한 조지 호지슨은 사업 기회를 찾고 있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양조장에 비해 그의 맥주는 아직 보잘것없었다. 이때 첫 번째 세렌디피티가 찾아왔다. 그의 양조장이 동인도회사가 운영하는 화물선 부두 근처에 있었던 덕분에 해운회사 이스트 인디아맨이 인도로 보낼 맥주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접한 것이다.
대형 양조장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이스트 인디아맨은 호지슨과 계약을 맺었다. 가장 큰 이유는 호지슨이 제공한 18개월의 장기 어음 때문이었다. 이스트 인디아맨 입장에서 물건 판매 대금을 최대 18개월까지 미룰 수 있는 건 대단한 이득이었다. 대형 양조장은 이런 조건에 인색했고 가격도 높았다. 경쟁이 치열한 런던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던 호지슨도 이스트 인디아맨의 요구를 기꺼이 수용했다.
영국에서 인도로 가는 맥주들은 다양했다. 까만색 맥주 포터를 비롯해 알코올이 낮은 스몰비어와 높은 알코올을 가진 옥토버비어가 대서양과 인도양을 건넜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맥주는 외부 미생물에 취약한 나무 배럴 안에서 적도를 두 번이나 지나야 했고 수개월의 시간을 버텨야 했다.
영국 양조사들은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었다. 홉이 가지고 있는 폴리페놀은 항산화 역할을 했고 높은 알코올은 외부 미생물로부터 맥주를 보호했다. 인도로 가는 모든 맥주는 상대적으로 알코올 도수와 쓴맛이 강했고 진한 홉 향을 갖고 있었다. 이때 호지슨에게 두 번째 세렌디피티가 다가왔다.
인도에 도착한 맥주는 경매를 통해 판매되었다. 어떤 양조장 맥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개월 동안 배 안에서 버틴 맥주의 맛과 품질만이 경매의 핵심이었다. 그때 한 맥주가 경매사의 눈을 번뜩이게 했다. 호지슨의 옥토버비어였다.
인도로 가는 여정을 버티기 위해 다량의 홉이 들어간 이 맥주에 놀라운 변화가 생긴 것이다. 색은 밝아졌고 향은 우아했으며 맛에는 기품이 있었다. 적도를 거치며 조성된 온도 변화와 의도치 않은 장기 숙성은 호지슨의 옥토버비어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최고의 맥주로 만들었다.
호지슨 맥주는 인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이 맥주에 매료된 사람들은 호지슨과 다른 맥주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프리미엄도 붙었다. 인도에서 호지슨의 성장은 놀라웠다. 1801년 1000배럴이었던 수출량은 1810년에는 4000배럴로 뛰었다. 호지슨이 창조한 이 맥주 스타일은 영국 본토와 호주, 미국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시대와 시간이 건넨 뜻밖의 행운은 보잘것없던 런던의 작은 양조장을 누구나 주목하는 곳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1821년 손자 프레데릭 호지슨이 사업을 맡으며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 이스트 인디아맨에게 주던 장기 어음을 철회하고 현금을 요구한 것이다. 가격도 20% 인상했다. 인도에서는 도매가를 매우 낮게 책정해 경쟁사의 진입을 원천 봉쇄했다. 세렌디피티를 만용으로 바꾼 이 선택은 결국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왔다.
버튼 에일을 선택한 세렌디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