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에 낙엽처럼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나에게 한없는 부끄러움을 준 정자, 광주 금곡동 삼괴정(三愧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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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식(choisad)등록 2022.11.18 09:08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부끄러움의 미학-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던 시대에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매천 황현에게 독배를 마시게 한 것도 부끄러움이었다, 난고 김병연에게 삿갓을 씌운 것도 부끄러움이었다.
 
옛 사람들은 염치를 인간과 축생간 차이로 봤다. 예(禮) 의(義) 염(廉) 치(恥),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나라를 지탱하는 4가지 도덕적 기둥 가운데 하나기도 했다. 맹자도 仁 義 禮 智에 따르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겸양지심, 시비지심을 말한다. 수오지심이 바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의롭지 않으면 마땅히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의로운 사람이 아닌 것이다. 개 돼지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광주 북구 금곡동에는 삼괴정(三愧亭)이 있다. 금곡동 입구 삼거리 길에서 소쇄원으로가는 도로 옆 하천가에 정자가 있다. 윗골 꾀꼬리 당산나무 자리다. 미립未立(학문을 이뤄 뜻을 세우지 못함), 미현친未縣親(아버지의 이름을 높이지 못함), 미교자未敎子(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함) -
세 가지가 부끄럽다며 무등산 기슭에 숨어살던 구한말 선비, 문 유식이 있었다. 삼괴정은 三愧 문 유식의 뜻을 기려 아버지가 놀던 곳에 아들 문 병일이 지은 것이다. 겸손과 자책의 마음을 정자에 담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다.
 
정자의 현판은 설주 송운회(雪舟 宋運會 1874~1965)가 썼다. 송 운회는 보성 출신으로 독특한 설주체를 완성했으며 "설주(雪舟)의 먹물에 보성강이 검게 물들어 아낙네들이 빨래할 수 없었다"는 전설을 낳았다. 마지막 일심(一心)이란 두 자를 남기고 92세 1965년 임종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서예의 숨은 거봉이다.
 
삼괴정에서 원효사 계곡에 있는 풍암정은 1.9 Km 떨어져있고 환벽당과는 2.4 Km 떨어져 있다. 지척에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취가정, 풍암정 등 내노라는 누정들이 즐비해서 그런 지 이런 탁월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삼괴정은 찾는 이가 거의 없다.
 
말로는 무한 책임을 떠들면서도 전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높은 사람들 얼굴로 텔레비전 화면이 어지럽던 무렵 요즈음 사람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을 몹시도 부끄러워했던 선비, 삼괴 문 유식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
 
정자가 빤히 건너다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운다. 정자를 찾아다니는 길이 고행길인 것은 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마는 가보니 세상에나! 길이 없다. 시뻘건 칠을 해 더욱 흉물스런 쇠다리는 아예 입구 문을 용접해 버렸다. 자꾸 발목을 붙잡는 마른 풀밭을 헤치고 돌고 돌아 도착한 그 길은 소요유의 산책길이 아니었다. 차라리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고난의 행군길에 훨씬 더 가까웠다.

허걱!!! 또한번 내 눈을 의심했다. 도착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산이 나를 에워싸고 그믐달 처럼 살라고 한다."(박 목월) 금곡동 삼괴정은 '산이 나를 에워싸고'가 아니라 '비닐 하우스가 날 에워싸고'의 정자였다. 무등산이 에워싸고 있는 정자인데 흉물스런 비닐 하우스가 에워 싸고 있는 것이었다. 비닐 하우스가 정자 주변을 에워싸는 것도 모자라 아예 비닐로 정자 몸체까지 칭칭 감고 있었다. 마을 한 가운데 있는 동네 정자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거기다가 마구 버려진 쓰레기들과 농자재, 찢어진 폐비닐 조각들이 가을 바람에 낙엽처럼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조폭 보스 강 사장은 부하 선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정자에 영혼이 있다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주먹질만 폭력이 아니다. 이건 문화나 문화 유산에 대한 모욕이자 폭력이다. 이러고도 문화 수도니 예향이니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오늘 삼괴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분명 부끄러움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러나 미립, 미현친, 미교자의 삼괴는 아니었다.
 
이상한 부끄러움만 무겁게 지고 돌아서는 삼괴정에는
봄꽃보다 더 붉은(霜葉紅於二月花) 마지막 단풍이 소리 없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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