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시골에 집을 지었는데 비우지 못한 채 채우고만 있었다.
최지희
어쩌면 내게 집짓기란, 저기 어딘가에 있을 무지개를 찾아 떠난 판타지 여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집만 짓고 살면 드라마틱하게 행복한 인생이 짠하고 전개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집을 바꾸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페이크고 내심은 한 방에 삶을 바꾸고 싶은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돌이켜보면 현재의 '꼬라지'가 만족스러웠던 순간은 별로 없었다. 취직하기 전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폼 나게 들고 다니는 직장인이면 좋겠네 했지만, 막상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직장만 그만두면 원이 없겠네 노래를 불렀다. 아파트에 살 때는 아파트만 벗어나면 행복의 나라로 갈 줄 알았다. 삶을 바꾸려면 나를 바꿔야 하는데 나는 내버려 둔 채 '내 삶은 왜 이러나' 바보 같은 질문만 던지고 있었다.
어제처럼 별일 없이 사는 오늘의 고마움을 모르고, 이벤트처럼 '행복'이라는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을 갈망했다. 전원 속의 내 집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닌데 고작 집 한 채 짓고 인생이 절로 달라지길 바랐던 못난 도둑놈 심보를 겸허히 반성했다.
분명한 건 집을 짓고 조금 다르게 산다고 삶이 막 그렇게 저절로 바뀌진 않는다는 것이다. 집은 기회를 줄 뿐, 어떻게 살 것이냐는 내게 달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게 행복일까.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행복이란 게 저 먼 곳 너머에 있는 무지개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겠다. 무지개는 필요 없다.
'저게 행복이지'가 아니라 '이게 행복이야'라는 마음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이제는 그 과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텅' 비어 있는 줄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남겨 둔 배달 앱을 지우면서, 정리를 정리하기 위한 정리 상자의 가격비교 검색을 그만두면서. 집의 유일한 수납공간인 싱크대 하부장을 이사 2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에야 마주하며 켜켜이 쌓아 올린, 집짓기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웅장한 욕심을 털어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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