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는 왕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다이애나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주)영화특별시 SMC
다이애나는 아프면 아프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미숙하고 나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영화를 보면서 왜 영국 국민들이 그토록 다이애나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에는 다이애나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고 도움을 주는 왕실 직원들이 나온다. 매기(샐리 호킨스)도 그중 한 명이다. 매기는 다이애나가 유일하게 왕실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두가 다이애나를 미쳤다고 생각할 때 "전하는 아름답잖아요. 그것만은 놓지 마세요"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사람. 매기는 왕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다이애나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크리스마스 만찬이 열리기 직전, 또다시 패닉에 빠진 다이애나에게 매기는 힘주어 말한다.
이겨내요. 맞서 싸워요. 품위를 지켜요. 전하의 무기는 전하 자신이에요. 자신을 무너뜨리지 말아요.
다이애나는 왕실이 정해준 새하얀 드레스에 구두 대신 장화를 신은 채 손전등을 들고 자신이 원래 살던 집으로 향한다. 계단과 바닥이 다 썩은 스펜서 가문의 집으로. 그곳에서 다이애나는 과거에 영국 국왕과 결혼했지만 다른 여자에게 밀려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죽임을 당했던 앤 불린을 만난다. 다이애나는 왕세자가 선물한 진주 목걸이를 목에서 뜯어내고 스스로를 가뒀던 벽을 무너뜨리기로 한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박싱데이, 다이애나는 허수아비에게서 벗겨낸 아버지의 낡은 코트를 입고 길을 나선다. 다이애나에게 용기를 주며 매기는 이렇게 말한다.
치료는 됐고 전하는 사랑이 필요해요. 사랑, 충격, 웃음. 아주 많이요.
게일 콜드웰의 책 <먼길로 돌아갈까?>에서 게일은 알코올중독자 자조 모임에서 알코올중독 치료 강사인 리치를 만난다. 스스로 구제 불능이라 자포자기했던 게일이 리치의 사무실에 찾아가 알코올중독 치료 예약을 잡던 날에 대해 게일은 이렇게 서술한다.
하지만 내가 술을 마셔 알코올중독을 자초했다는 수치심과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그날 리치가 말해준 한 가지만은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 뭐가 그리 무섭냐고 물어보는 그에게 나는 흐느끼며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아무도 다시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겁나요." 리치는 양손을 마주잡고 만면에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모르고 있었어요?" 그가 상냥하게 말했다. "우리는 그런 결함을 사랑하는 거예요."
이전에는 알코올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는 게일은 "하지만 더는 그렇지 않다"고, "이제는 그저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기로 결심"했다고.
영화 <스펜서>를 보며, 책 <먼길로 돌아갈까?>를 읽으며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은 성취가 아닌 결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언제 마음이 쓰이는지 떠올려 보면 그 사람의 약함이 나의 약함과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나도 내게 힘을 줬던 사람들처럼 있는 힘껏 손을 뻗으며 말하고 싶었다. 당신만 엉망진창이 아니라고. 나도 그렇다고. 그러니 약한 우리는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일을 쉰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일 중독자가 일을 그만두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지구에도 내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통장 잔고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내게는 그만큼 빈 시간이 늘었다. 빈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될 때면 매기의 말을 떠올린다. "사랑, 충격, 웃음.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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