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농증 때문에 자살? 형을 대신해, 30년째 동생이 국가와 싸운다

1992년 제22보병사단 고(故) 안경환 일병과 동생 안보환 씨

검토 완료

정현환(surpernova)등록 2022.11.11 09:02
"축농증 때문에 자살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수류탄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었다는데 근거가 없어요..."


육군 안경환 일병

군번 91-71028083. 고 안경환 일병은 1991년 12월 3일 입대했다. 44일째인, 1992년 1월 16일 제8군단 제22보병사단 56 연대에서 배치됐다. 하지만 안 일병은 같은 해 7월 1일 해당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 수사당국은 망인이 GOP 근무에 투입되어 경계근무를 서다가 K-2 소총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스스로 쐈다고 사망 경위를 발표했다.

1992년 당시 헌병대(현 군사경찰) 중요사건 보고는 안 일병이 "'결손가정', '축농증' 등의 이유로 때문에 삶을 비관해 자살했다."라고 명시했다. "예정되어 있던 휴가가 두 차례 연기되어 신변을 비관했다."라고 유족에게 망인의 사망 배경을 전달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4년 국방부 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 조사결과 보고서도 안 일병이 "모친의 가출", "동생들 생계유지 부담감" 등의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했다고 통보했다.
  
이러한 군의 발표는 의미한다. 고 안경환 일병이 군 의무복무 도중에 사망했지만, 그 주된 이유가 '개인 신상' 때문이라는 걸 말한다. 따라서 군 의무복무 도중 사망한 군인의 죽음과 관련, 군과 국가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걸 설명한다. 하지만 유족은 헌병대와 국방부의 조사 내용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약 30년째 국가와 싸우고 있다.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군과 유족은 각각 무엇을 근거로 30년째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을까.

 

고 안경환 일병의 동생 안보환 씨는 형의 죽음과 관련, 30년째 진실을 좇고 있다 ⓒ 정현환

 

군은 30년째 무슨 근거로 '자살'이라 하나

고 안경환 일병의 유족이 30년째 국방부와 군, 보훈처와 싸우며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이렇다. 유족은 1992년 헌병대 조사와 2004년 국방부 조사 내용이 그 어떠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군과 국방부가 망인의 사망 배경과 원인을 두고 발표한 내용이 근거가 매우 미약하기에 오늘도 국가와 다투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먼저, 제22사단 헌병대 조사결과 보고서다. 군은 1992년 1월 고인이 자대 배치를 받고, 중대장 면담 5회, 소초장 면담 17회를 한 횟수를 제시하며 그 과정에서 안 일병의 "불우한 가정환경과 가족관계를 확인했다."라고 기록했다.

여기에 군은 안 일병이 부대에서 사망하고 그의 입대 전 성장과정을 파악한 결과, 입대 전 안 일병의 부친이 '음독자살'을 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에 따라 고인이 "아버지를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라고 망인의 사망 원인으로 내세웠다. "과거에 모친이 가출한 사실도 있었다."라고 주장하며, 망인의 자살 이유 중에 하나로 꼽았다.

1992년만 그런 게 아니었다. 2004년 국방부 '전사망민원조사단 재조사 결과보고서'도 그 흐름을 따라간다. 국방부는 안 일병의 사망의 원인이 불우한 성장배경에 있다고 말하며, "궁핍한 가정환경", "만성 축농증", "입대 후 신병교육 중 수류탄 자살 미수" 등의 이유로 안 일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발표했다.

헌병대와 국방부가 조사해 발표한 내용의 근거는 무엇일까. 군은 1992년과 2004년 각각 한 번씩, 총 두 번에 걸쳐, 고 안경환 일병의 생활기록부를 확인했다. 이 내용을 근거로 망인이 사망한 지 30년째인 지금까지 망인의 자살이 입대 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이미 입대 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일까. 30년째 군과 국방부 주장의 핵심인 경기도 성남시 판교중학교와 대전광역시 서대전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직접 살펴봤다. 망인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확인할 수 있는, 30년째 군이 주장하고 있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입증하는 근거와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확인할 수 없었다. 오히려 대신 가득했다. 헌병대와 국방부의 조사결과와 달리, 고 안 일병의 생활기록부엔 개인적으로 불우하다고 볼 수 없는 근거로 차고 넘쳤다. 망인의 생활 기록부엔 "성실하고 활동적이며 학급 일에 협조적 (중1)", "성적이 우수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생활태도 (중2)", "실장으로 학생들 간의 관계가 좋고 (중3)"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묵하고 성실하며 교우관계가 원만함 (고1)", "과묵하고 성실하며 주어진 일에 잘하려는 의지가 돋보임 (고2)", "말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함 (고3)"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헌병대와 국방부가 고인의 사망 후, 자살의 배경과 관련됐다고 주장하는 학창 시절 관련 문서 어디에도 고인이 평소 신변을 비관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군의 주장대로 고 안경환 일병은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유족도 이 사실을 현재 인정한다. 망인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이로 인해 어머니 혼자서 4명의 자식을 돌봐야 했다. 하지만 군은 망인의 성장배경이 자살의 주된 이유 중에 하나라고 말할 뿐, 궁핍했던 가정환경이 어떻게 안 일병의 자살과 연관이 있는지 30년째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않았다.

군과 국방부는 했어야 했다. 누구에게서 망인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들었는지, 중·고등학교 담임교사를 만나 진술을 확보한 것인지, 망인과 같은 학교를 나온 동기 동창을 탐문한 것인지, 고인의 일기장이나 메모를 검토한 결과인지 30년째 근거 없는 주장만 했다. 그럼에도 군과 국방부는 1992년과 2004년에 자신들이 직접 실시한 수사와 조사 내용을 토대로 입대 전 망인의 개인 사정이, 입대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주장만 현재까지 반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 안경환 일병의 동생 안보환 씨는 지난 2018년 11월, 대통령 직속기구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를 했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은 두 번째 신청이었다. 30년째 국방부가 제대로 된 근거 제시 없이, 형의 죽음을 오로지 개인의 잘못과 나약함, 궁핍했던 어린 시절을 자살의 주된 이유로 꼽으며 물러서지 않아서였다.
   

고 안경환 일병의 중학교 생활기록부(제공: 고 안경환 일병 동생 안보환 씨) ⓒ 정현환

   
축농증 때문에 자살?
근거가 없는 헌병대와 국방부 보고서

 
"만성 축농증"

군과 국방부의 입장과 달리, 유족이 30년째 받아들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는 바로 망인의 '축농증' 주장이다. 1992년에 헌병대는 고 안경환 일병의 불우한 성장과정을 말하며, 망인이 자살을 하게 된 두 번째 이유 중에 하나로 초등학교 1학년 때 발생한 '만성 축농증'을 꼬집었다. 2004년 국방부 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도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주요 이유에 축농증이 큰 비중을 차지함을 명시했다.

축농증은 전문용어로는 '부비동염(Sinusitis)'이라고 한다. 코에 생기는 일종의 염증 증세로, 심할 경우 두통을 일으키고, 악취가 나는 분비물이 코에서 계속 나오는 경우를 일컫는다. 더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접하는, 코에 누런 콧물이 가득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그 증상을 뜻한다.

사실일까. 축농증인 코부비동염으로 정말 고 안경환 일병이 자살하는데 큰 영향을 줬을까. 현재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는 만성 코부비동염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질환이지만, 다행히 그 합병증은 매우 드물고 항생제의 발달과 더불어 점차 감소하고 있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는 "코부비동염이 의심될 때에는 의사의 지시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꼭 받아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합병증은 급성과 만성 코부비동염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으나, 급성 코부비동염에서 더 잘 생깁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1992년 헌병대와 2004년 국방부 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 조사결과보고서는 이 사실을 토대로 망인이 축농증으로 어떻게 자살하게 됐는지 정확히 제시해야 했다. '급성'이 아닌 '만성' 축농증이 고 안경환 일병의 사망의 주된 이유가 된 구체적인 근거를 보여줘야 했다.

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입대 전 진단서나 진료확인서, 처방전 등의 명백한 사실과 객관적인 증거를 보여줘야 했다. 국방부가 고인의 생활기록부를 확인할 때, 건강상 문제가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했다. 입대 후도 마찬가지. 군 의료시설과 의무관의 검진 기록이 있어야 했고, 이 사실을 토대로 고 안경환 일병이 K-2 소총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하지만 찾아보기 힘들다. 군과 국방수 보고서를 보면,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망인은 1991년 12월 3일에 입대해 1992년 7월 1일 사망할 때까지 군에서 총 212일을 생활했다. 이 사실은 의미한다. 군이 '만성적', 그러니까 일상에서 만연하게 축농증에 시달렸다고 말하려면, 안 일병과 212일이라는 시간 동안 같이 내무생활을 한 선임과 후임, 동기의 진술을 제시하면 될 일었다.

군과 국방부의 허무맹랑한 주장에 고 안경환 일병의 유족은 2018년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위원회는 2019년 1월에 조사를 시작해, 같은 해 11월까지 '만성 축농증' 여부를 검토했다. 그 결과, 망인의 소대장 아무개는 "제가 느끼기엔 축농증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심했다면 외부진료를 다닐 텐데 제 기억에는 외부진료 기억은 없습니다."라고 진술했다.

망인의 후임병 아무개도 "망인과 같은 내무실에서 생활하며 제가 바로 옆자리에서 잠을 잤는데 축농증에 대해 불편함은 전혀 들은 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부소대장 이 ○○은 "저는 망인 안경환이 축농증 이유로 자살을 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습니다."라고 하며, "축농증으로 본인이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하거나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고 안경환 일병 축농증 관련, 부대 지휘관 진술 내용 중 일부 ⓒ 정현환

     

수류탄으로 자살기도?
증거도 없이 30년째 주장만 하는 군(軍)


"수류탄으로 자살기도"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국방부는 고 안경환 일병 자살에 있어서, 불우한 가정환경과 축농증이 주된 이유라고 주장하며, 마지막으로 수류탄으로 자살을 기도한 점도 망인의 자살에 크게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군과 국방부는 지금까지 망인이 신병 훈련소에서 수류탄으로 자살시도를 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자대 배치를 받고 연이어 휴가가 미뤄진 상실감으로 근무 도중 K-2 소총으로 자신을 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일까. 군과 국방부의 주장을 신뢰할 수 있을까. 고 안경환 일병의 친동생 안보환 씨는 1992년 헌병대와 2004년 국방부 조사에서 언급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와 문서, 진술을 지난 30년 동안 요청했다. 동생 안 씨는 "형이 수류탄으로 자살 시도한 적이 없었다."라고 주장하며, "다른 건 몰라도 수류탄이라는 무기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수류탄 자살기도는 군과 국방부 스스로가 입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동생 안보환 씨로부터 진정 접수를 받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약 10개월에 걸쳐 수류탄 자살시도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망인의 부대 관계자를 만났다. 소대장 황 ○○ 씨는 "망인의 가정사와 훈련소에서 수류탄으로 자살시도를 해 관심사병으로 분류했다."라고 진술했다. 행정보급관 이 ○○ 씨도 "망인이 훈련소에서 수류탄으로 자살시도를 했다."라고 답했다. 부소대장 이 ○○도 "입대 전에 1회, 훈련소에서 1회 자살을 시도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도 이들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전혀 확인 및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위원회가 실시한 고 안경환 일병 수류탄 자살시도 유무 조사에서 부소대장 이 ○○ 씨가 "정확하게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진술한 점을 보면 그렇다. 부소대장뿐만 아니라 선임병 김 ○○ 씨가 "당시에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모르지만"이라고 입장을 밝힌 점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망인이 과거에 실제로 수류탄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했었는지 1992년 헌병대, 2004년 국방부, 2019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수사 및 조사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세 군데의 국가기관이 파악한 건, 오로지 망인과 관련된 당시 부대 관계자들의 진술뿐이었는데, 이마저도 출처가 불명확한 일종의 카더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고 안경환 일병이 신병 훈련소에서 수류탄으로 자살을 기도한 점은 사실로 보기 힘들었다. 뒷받침하는 근거가 현재까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동생 안보환 씨는 "수류탄이라는 무기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적어도 군 기록물에서 수류탄으로 자살을 시도한 내용이 어떤 식으로도 존재해야 된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방부는 유족의 이러한 요구와 비판에 "사건이 오래되어 기록이 많이 없다."라는 답변을 30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고 안경환 일병 수류탄 자살기도 관련, 부대 지휘관들 진술 내용 중 일부 ⓒ 정현환

 

나아가 군은 유족의 비판과 의문에 지난 30년 동안 이러한 합리적인 의심과 의문을 반박하는 그 어떠한 자료도 제시하지 못했다. 대신 군이 유족에게 제공한 건, 1992년 당시에 고 안경환 일병의 사망 소식을 유족에게 전달하고, 부대를 방문한 망인의 어머니와 큰 여동생에게 사건 현장이 청소된 고인의 사망 장소를 보여준 게 전부였다.

결국 고 안경환 일병 사망 사건에서 지난 30년 동안, 군의 주장은 확인되지 않거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진술을 토대로 망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오직 국방부만 망인의 궁핍한 가정환경으로 인한 부담감, 아버지의 극단적인 선택이 망인의 자살로 이어졌다는 주장, 축농증이라는 개인적 질환이 망인을 자살로 몰고 갔다고 강조할 뿐이었다. '수류탄'으로 자살을 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그 미수 경험이 'K-2 소총'으로 이어져 자살했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군의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30년째 책임자 처벌은커녕 사과하지 않는 국방부

 
그렇게 지난 30년 동안, 고 안경환 일병 사망과 관련하여 군이 신빙성이 떨어지는 주장을 반복하는 가운데, 2019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의원회 조사과정에서 오히려 군의 잘못된 일처리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92년 제22사단 헌병대가 작성한 '중요사건보고'에서 부소대장 이 ○○은 "저도 망인이 실탄과 수류탄을 소지하는 GOP 근무에 차출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으나 당시 대대장이 인력 부족을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데려갔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같은 수사에서 행정보급관 이 ○○도 "제가 당시 대대장님께 망인의 심층적인 상담을 해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 GOP 근무는 안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라고 하며, "하지만 대대장님께서 현재도 GOP 근무 병력이 부족한데 망인까지 제외하게 되면 남은 병사들이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GOP 근무에 투입하였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이러한 사실은 의미한다. 부소대장과 행정보급관이라는 군 경험이 많은 경력자들의 의견과 입장을 당시 부대 지휘관이 묵살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 안경환 일병은 근무하기에 부적절한 GOP에 투입됐고, 연이은 휴가 취소 소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죽음. 그런데 군 규정에 어긋난 부대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징집된 청년이 목숨을 잃었지만, 사건 발생부터 지금까지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처벌받고 책임을 진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군과 국방부는 1992년 헌병대 수사, 2004년 국방부 조사, 2019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 군의 과실이 있었음이 드러났음에도 이와 관련, 현재 유족에게 어떠한 사과나 입장 표명을 한 적이 없다.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망인의 죽음의 주된 이유로 개인 신상에 따른 신병 비관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고 안경환 일병 사망사고 관련, 군의 잘못을 보여주는 당시 부대 관계자들의 진술 내용 중 일부 ⓒ 정현환

 

막을 수 있었던 형의 죽음,
그래서 30년 동안 국가와 싸웠다


지난, 2019년 11월 25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고 안경환 일병 관련 '진상규명' 결정을 했다. 위원회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6조에 따라 국방부 장관에게 망인의 순직을 재심사하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 군의 증거 제시 부족과 고 안경환 일병과 당시 군 복무를 같이 했던 직속상관과 부대 관리자, 선임병과 후임병의 진술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2020년 3월 9일 김용우 육군 참모총장은 인정했다. 28년 동안 "'순직' 처리를 할 수 없다."라는 기존 군의 입장을 뒤집었다. 순직자 분류기준표(2018년 2월 13일에 개정)에 따라 '순직Ⅲ형'으로 구분, 그렇게 고인의 명예가 사망한 지 28여 년 만에 실추된 명예와 예우가 일부 회복됐다. 1992년에 단순 자살로 인한, '일반사망'으로 분류됐던 고 안경환 일병은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이 됐다. '순직자'가 됐다.

하지만 오늘도 유족은 싸운다. 고 안경환 일병의 동생 안보환 씨는 지금 국가와 다투고 있다. 형이 사망하진 28년 만인 2019년에 형이 '순직' 처리가 됐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군과 국방부라는 국가기관에 더 따져볼 요량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하나밖에 없는 형의 죽음과 그 진실을 좇는 과정에서 국가가 유족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따라 죽은 거네요?"

동생 안보환 씨는 "2004년 국방부 조사과정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조사과정에 조사관이 망인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꼬집으며, "자살이 유전됐다", "아버지를 따라 죽은 거네요?"라고 망인과 유족을 모욕했기 때문이다.

망인의 동생 안보환 씨는 아버지의 자살이 형의 자살로 이어졌다는 궤변에 유족은 "18년이 지났지만 국방부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안 씨는 "군 의무복무 도중 사망했음에도 제대로 된 예우는커녕 확실한 근거 없이 지난 30년 동안 국방부가 허위에 가까운 주장만 했기에 적절한 사과를 받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동생은 형의 죽음과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글도 모르고 인터넷도 할 줄 모르는,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와 가족이 우리 사회에 많다."라고 말하며, "지금도 간간이 다른 유족으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연락을 받고 있다."라고 했다. 그래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형의 명예를 회복하면서 동시에 다른 군 사망사고 유족의 진상규명에 힘을 보탤 생각이다."라고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밝혔다.
     
덧붙여 안 씨는 "우리의 보훈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라고 말하며, "순직 분류 기준이 너무 다양한데, 그 처리 과정은 너무 더디다."라고 하며, "앞으로 다른 유족에게 자신이 정보 얻은 노하우를 공유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군 사망사고 유족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여건이 되는 한 도움을 드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1992년 군 의무복무 도중에 형이 사망했을 때 14살이었던 소년은 올해로 44살 어른이 됐다. 진실을 좇는 투사가 되어, 30년째 국가와 싸우고 있었다. 국가가 사람을 버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다른 유족을 돕고 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로 1992년 사망한 고 안경환 일병 사건에서 군의 관리 소홀과 수사의 미흡한 점이 드러나, 망인은 28년 만에 ‘순직자’가 됐다(사진: 정현환) ⓒ 정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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