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마다 대형 LCD 화면이 설치되어 있는 인도의 최신 열차 '가티만 익스프레스'
전명윤
2020년 2월, 인도의 델리에서 암리차르로 가는 고속열차 사땁띠 익스프레스 12031편은 너나 할 것 없이 차내 사진을 찍는 승객들로 떠들썩했다. 인도 철도청은 기존의 초고속 열차인 '사땁띠 익스프레스'와 '라즈다니 익스프레스'의 뒤를 잇는 '가티만 익스프레스'를 운행하기 시작했는데 가티만 익스프레스의 신형 객차를 사땁띠 익스프레스의 델리-암리차르 구간에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이 날이 신형 객차를 처음 운행하는 날이었다.
기차는 항공기 같았다. 고정식 LCD가 좌석마다 설치되어 있었고 USB 충전 포트도 있는 등 기존 인도 기차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부대 설비가 다양했다. 신기한 마음에 LCD를 꾹꾹 눌러봤지만 켜지지 않았다. 차장에게 물어보니 이건 객차만 가티만에 사용하는 신형 차량일 뿐 운행은 사땁띠라 LCD를 틀 수 없다고 알려줬다.
주변의 인도인들도 나처럼 LCD를 꾹꾹 누르고 있던 차에 외국인이 의기양양하게 물어보니 모두 나를 주목했고, 차장의 대답에 일제히 실망스러운 얼굴을 했다. 차장이 표 검사를 마치고 다음 객차로 넘어가자마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터번을 두른 인도인이 자신은 라젠드라 싱이라며 악수를 청했다.
"유아르 컨츄리(너네 나라? 너 어디서 왔어?)"
"꼬리야."
"김죵은?"(김정은?)
"네히, 김죵은 우뻐르 코리아, 무제 안다르 코리아."(아니, 김정은은 북한, 난 남한)
"압 힌디 볼따헤(너 힌디 할 줄 알아)?"
"토라. 앙글레시 베터(조금, 영어가 나아)."
인도에서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인도의 국어인 힌디어는 어순이 한국어와 같다. 이것만으로도 꽤 유리하다. 우리처럼 인도인도 영어로 말하기 전 어순을 먼저 생각한다. 피차 머리 아픈 상황인데, 다행히 많은 인도인은 자기네 어순대로 영어 단어를 나열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한국인으로서도 무척 편하다. 알아듣기에도, 말하기에도.
이런 대화를 보면 미국 유학한 친구들은 브로큰 잉글리시라고 영어 취급을 안 하지만 어차피 그들도 인도 오면 내 통역없이는 인도인과 대화할 수 없으니 적어도 인도에서는 내가 영어 천재다. 게다가 인도에서의 대화는 힌디어에 영어 단어를 섞고, 영어 대화를 할 때는 힌디어를 섞는다. 즉 양쪽 말을 적당히 알지 못하면 대화 도중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네히, 김죵은 우뻐르 코리아, 무제 안다르 코리아"에서 네히는 힌디에서 부정형이고, 우뻐르는 위, 안다르는 아래라는 뜻이다. 즉 김정은은 북한이고, 난 남한에서 왔단 말이다.
부자의 잔칫상을 거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