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여름이었다. 김서연(42·가명)씨는 그 날을 "어쩌다가 레이스 치마를 꺼내 입은 날"로 기억했다. 사놓고 내내 입지 않아 아까웠던 살랑거리는 치마를 입은 날, 그 일이 발생했기에 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초저녁, 집에 들어가는 길. 오가며 마주친 적 있는 윗집 남자가 가로등 아래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고 했다. 유독 뚫어지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이 거북했다. 애써 외면한 채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공동 출입문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 그 남자의 시선이 치맛자락에 따라 붙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 날 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달칵 대문 손잡이를 열려는 소리도 이어졌다. 서연씨 집에는 올 사람이 없었다. 서연씨가 살던 다세대 빌라는 한 층에 세 집이 마주보고 있는 구조였다. 나머지 두 집 모두 여성이 거주하고 있어 그 점이 마음에 들어 계약한 집이었다고 했다. 다른 집과 대문을 마주 보고 있기에, 서연씨는 '옆집에 누가 왔겠지'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애써 귀를 막았다고 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문 밖의 소리를 밀어냈다. 그렇게 그 날 밤이 지나갔다.
아무래도 찝찝했다. 겨우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 집 문 앞에 달아놓은 CCTV를 돌려봤다. 그 날 밤 12시, 눈이 마주쳤던 윗집 남자가 서연씨 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러대고 현관문 손잡이를 열어보려한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다. 그 남자는 1시간 반 동안 서연씨가 사는 층을 들락거리며 계속해서 '침입'하려 했다.
그렇게 CCTV를 확인하고도, 뭘 할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불안이 쌓여갔지만 윗집 남자는 태연했다. 엘리베이터 등에서 눈이 마주치면 도리어 눈을 부라렸다.
30대 초반까지 가족과 함께 살던 때 서연씨에게 집은 "완벽히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대세대 빌라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며 "집이 범죄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완벽히 안전한 공간'이 아닌, 더군다나 내 집에 침입하려던 남자가 윗집에 사는 그 빌라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결국 그녀가 빌라를 떠났다. 2021년 9월의 일이다.
본래 계약은 2022년 8월까지였다고 했다. 계약 만료 전 집을 떠나며 새로운 세입자를 알아보는 일도,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 일도, 이삿짐을 싸는 일도, 이사비용을 대는 일도 고스란히 서연씨 몫이 됐다.
이사하고 3개월 후, 서연씨는 경찰에 2021년 여름의 일을 신고했다. "문을 두드린 것만으로는 상대가 '실수했다'하면 넘어갈 줄 알았다"는 그녀에게 경찰이 '주거침입 미수' 범죄임을 알려줬다고 했다.
얼굴이 또렷이 찍힌 CCTV 화면을 경찰에 넘겼다. 경찰 수사를 지나 검찰로 사건이 넘어갔다. 한 달 후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 '합의하라'고 했다. 서연씨는 "검찰 쪽에서 계속 '합의를 하는 게 가장 편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합의를 하려면 그 남자를 마주해야 하는 줄 알았던 서연씨는 한 달 동안 합의를 거부했다.
2022년 4월, 합의 조정이 마무리됐다. 합의금으로 300만 원을 받았다. 8개월 만에 자의·타의로 '주거침입 범죄'에 종지부가 찍혔다. 서연씨는 이 같은 사건을 수사·조사하는 담당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서연씨는 경험담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소개하기도 했다. 영상에는 같은 두려움을 공감하는 여성 1인가구 등이 CCTV 설치 방법·비용을 문의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도 했다. 서연씨에게 직접 '1인 여성 가구'의 안전을 위한 방안을 물었을 때에도 공권력이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녀는 "CCTV를 믿게 된다"고 했다.
이미 그 집을 떠났고, 이사한 집에도 CCTV를 달았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여름날 밤 한 남자가 집 문 앞을 서성였을 뿐이다. 대문을 두드렸고,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을 뿐이다. 술 취해서 실수로 그런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일상이 달라졌다. 불안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이런데도 '술 취해서 그럴 수 있는 일'일까. 그녀는 되묻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