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0일 미국의 공공부지에 위안부 기림 시설 건립을 추진해온 가주한미포럼은 로스앤젤레스 인근 글렌데일 시립 중앙도서관 앞 시립 공원에서 소녀상을 제막했다.
연합뉴스
소녀상이 확산되는 것은 해외 한국인들과 한국 인권운동가들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현지 주민들이 소녀상 설치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지 주민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를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전쟁과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켜 자신과 이웃들을 지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소녀상 설치를 수용하는 해외 현지인들은 이를 '과거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문제'로 인식한다. 2013년 7월 30일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에서 소녀상이 세워질 때에 현지의 아르메니아계가 특히 많은 응원한 것은 투르크족 오스만제국(튀르키예·터키)의 소수민족으로 살았던 이들이 제1차 세계대전 때 집단학살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5월 30일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운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처한 현재의 문제에 대처하고자 건립을 결정했다. 당시 페어팩스에서는 여성 인신매매가 증가하고 있었다. 카운티 의원들이 기림비 설치에 동의한 것은 인신매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카운티 정부가 이를 예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세계인들이 위안부 문제를 '과거 한국의 문제'가 아닌 '현재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이 있다.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이 용기 있게 증언한 1990년대 초반에 이 문제를 널리 알린 전 세계 인권운동가들이 그들이다.
주목할 사람들
1991년 소련 해체 뒤에는 진영 간의 냉전구도가 크게 이완되면서 미국의 입김이 예전 같지 않게 됐다. 이로 인해 발생한 현상 중 하나가 세계 각지의 민족분쟁 격화였다. 이런 민족분쟁이 여성에 대한 전시 성폭력을 가중시켰고, 세계 인권운동가들은 위안부 문제를 그런 현안들과 함께, 또는 연관지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운동가들이 벌인 그런 노력 중 하나가 1995년 8월 한국 언론들에 보도됐다.
그달 24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베이징 여성회의 일본군 위안부 세계에 고발'이란 기사는 "베이징 여성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인 여성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라며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뿐 아니라 각국의 인권단체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쟁 중에 발생한 조직적인 성폭력'으로 규정, 여러 세미나를 통해 쟁점화할 뿐 아니라 회의 마지막 행동강령 채택 때도 반영하도록 강력히 요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노력은 1992년 3월 발발한 보스니아 내전과 1994년 4월 발발한 르완다 내전을 이 문제와 접목시키는 구체적 실행으로 이어졌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피해는 보스니아·르완다에서 벌어진 참상과 많이 다르지만 전쟁 중에 여성이 겪은 성폭력 피해라는 공통점이 있다. 1990년대 세계 인권운동가들은 이 공통점을 매개로, 보스니아·르완다 참상에 경악한 세계인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 관심사로 부각된 데는 이런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세계인의 문제가 되었다.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미국에 소녀상이 새로 세워지는 것도 그런 기류를 반영한다.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위안부 문제를 양국 정부 차원에서 적당히 봉합하려 하지만, 소녀상의 세계적 확대는 이 문제가 두 정부의 손을 떠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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