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출근길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마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린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도처가 폐허다. 총체적 난국이란 말은 마치 오늘 같은 시절을 대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뭐만 잘못하면 다 정부 탓을 하는 사람들도 아니꼽지만, 작금의 정부는 도무지 탓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삽질도 정도껏 해야지, 정도껏. 대통령은 '미안, 카메라 있는 줄도 모르고 욕을 해버렸네'라고 사과했으면 지나갔을 일을 질질 끄느라 '외교 참사'라는 말이 나올 지경까지 사태를 몰고 갔고, 자기를 놀리는 그림 하나에 길길이 날뛰는 소인배다.
정부의 인사는 줄줄이 망해서 정부 출범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내각 구성도 하지 못했다. 멀쩡한 청와대 놔두고 굳이 차 막히는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겨서는 돈은 돈대로 쓰질 않나, 자기들 욕먹는 건 다 언론 탓이라며 방송국 앞에서 시위도 한다. 정도껏 해야지, 정도껏. 좀 과격한 표현일 수 있지만, 이 정부는 아무래도 출범 6개월 만에 망한 것 같다.
정부가 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언론은 뭘 하고 있나. 어느 언론사는 이 정부 편들기 바쁘고 어느 언론사는 이전 정부 편들기 바쁘다. 각자의 독자들은 서로의 언론사를 '기레기'라고 부르느라 정신없다.
그러는 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저널리즘'은 실종됐다. 스토킹을 밀착 취재라고 부르고, 벌건 대낮에 휘두른 폭력을 응징 취재라고, 음모론을 합리적 의심이라 부른다. 언론인들은 '우린 유튜브만 봐'라고 말하며 유튜브 렉카를 언론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통탄하지만, 사실 그건 다 자초한 일이다.
(이 글이 실리는 매체를 포함하여) 어느 언론사가 '우리는 정론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쓰다 보니 문득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 저널리즘의 요체는 뻔뻔함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드네.) 유튜브 렉카보다도 신뢰받지 못하는 언론, 정론지 하나 없는 언론이라니. 한국의 언론은 아무래도 망한 게 분명하다.
와중에 신난 건 '자본'이다. 재벌 기업과 그 밑의 마름들. 사람이 죽은 빵 공장에서 빵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 직원들에게 자사주를 판매해놓고 자기들은 수천억 수익 챙겨 도망가는 사람들, 사람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사람들, 안전하게 일하고 싶어 노조를 만들었더니 직장을 폐쇄하는 사람들, 거대한 건물을 짓겠다고 사람을 불태워 죽인 사람들, 걔네들은 안 망했다. 하지만 우린 걔네가 아니니까. 걔네를 우리라고 해 줄 수도 없고.
사실 놀랍지만은 않은 일이다. 생각해보면 이 나라 정부는 원래 망해 있었다. 군홧발로 청와대에 쳐들어가서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던 정부가 이 나라 정부였다.
그런 정부를 옹호하고 미화하다 못해 찬양까지 하던 것이 이 나라의 언론이었고, 그런 정부와 그런 언론에 돈을 주고 자기들이 하는 온갖 나쁜 짓, 그러니까 탈세나 밀수나 노동착취나 부정축재를 눈감아 달라고 한 것이 이 나라의 자본이었다. 우리는 원래 망해 있긴 했다. 그래도 우리는 어떤 희망 같은 것을 만들어 왔다(찾은 것이 아니라). 그리고 우리가 어쩌면 진짜로 망했을지도 모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