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잘못을 한다. 자료사진.
픽사베이
누구나 잘못을 한다. 우리는 넘어지면서 걷는 것을 배웠다. 잘못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도 없다. 오답 노트가 효과적인 이유는 틀린 답을 교정했을 때 정답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을 깨닫는 순간은 기쁘고 위대한 순간이어야 한다.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걸 배우는 순간, 나는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잘못을 깨닫는 순간을 부끄러워하면서 감추려는 데 급급하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못을 지적한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방금 한 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잡아떼는 것은 기본, 상대가 잘못 들었을 것이라며 몰아세우기도 한다. 그렇게 더 나은 인간이 될 기회를 놓쳐버린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미운 사람들이 종종 생기기 마련이다. 제때 사과만 받았어도, 이렇게까지 상대를 미워할 일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못 해서 멀어지고 갈라진 관계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적절한 시점에 사과를 하고, 받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우리는 왜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까
로버트 치알디니 박사는 <설득의 심리학>에서 이를 '일관성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이미 내린 결정이나 이미 저지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옳은 결정을 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그저 편리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마음을 정하면 일관성을 고수하는 편이 낫다.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예를 들어 수 많은 종류의 자동차 중에 하나의 차를 골라서 샀다면, 선택하지 못한 다른 차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피곤하기 때문에 내 선택에 합리화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일관성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경우에 따라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행동까지 하게 만든다.
뇌 과학의 측면에서 김호와 정재승은 인간은 구조적으로 사과하기 힘든 뇌를 갖고 있다고 밝힌다. 인간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누군가 알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나 피해에 대한 우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는 뇌에서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활동을 방해하고,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우리 뇌를 지배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상황에 대한 판단보다는 발생할 수 있는 위협에 촉각을 세우고 방어적인 논리에만 치중하게 된다.
스트레스와 피로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뇌의 작용이 결과적으로 나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기업의 측면에서도, 개인의 측면에서도 갖가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시대다. 사소한 실수가 풍선처럼 부풀려지기도 하고, 실체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기도 한다. 잘못이 미디어를 통해 박제되고 유포된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회피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문제가 되곤 한다. 인간관계라고 다를까. 절교, 결별, 퇴사, 이혼 등 여러 가지 관계 단절은 메신저에서 벌어진 작은 실수와 적절한 사과의 부재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잘못이 잊히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사과의 3단계, 결정 - 인정 -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