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571호 '충무공대첩비'의 건립 역사 정확히 안내해야

현재 위치는 해방 후에 복원한 곳, 여수 동령현(충무동)이 원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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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종(21105)등록 2022.09.27 14:22

통제이공수군대첩비각 이충무공 대첩비 혹은 좌수영대첩비라 불리는 비석과 타루비(墮淚碑)가 이 비각 안에 있다. 이 비각이 처음 세워진 곳은 여수시 충무동이다. ⓒ 오병종


전남 여수시에 있는 보물 제571호인 충무공대첩비 안내가 부실하다. 원래 건립된 곳에 대한 정확한 안내가 빠졌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보물571호, 아래 '대첩비')는 현재 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의 고소대에 자리잡고 있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의 안내판에는 맨 처음에 동령현에 건립했다는 내용이 빠져 있어 원래부터 고소대에 건립한 것으로 이해하도록 적혀있다.

대첩비를 둘러 본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은 "원래부터 대첩비가 이곳 고소대에 건립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 어느 곳에도 대첩비의 초창기 건립 역사에 대해서 상세히 안내하고 있지 않은 탓이다.

여수시에서 세운 대첩비 안내판에 적힌 현재의 안내문 전문이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로서 '좌수영대첩비'라고도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수군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비석으로, 국내 비석 중 가장 큰 것으로 유명하다.

1615년(광해군 7년) 이순신의 부하였던 유형이 황해도 병마철도시가 되어 그 곳에서 보내온 가장 좋은 석질의 돌로 세웠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統制李公水軍大捷碑)'라는 비 명칭은 김상용의 글씨이며, 비문은 오성대감 이항복이 짓고, 명필 김현성이 글씨를 썼다.

1942년 여수경찰서장인 일본인 마쓰키가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비각을 헐고 이 비석과 타루비를 감추어 버렸는데, 이를 1946년 창덕궁 밖에서 발견하고 1947년 여수 사람들이 앞장서서 조직한 '충무공비각복구기성회'가 이곳에 복원하였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 안내문 ⓒ 오병종


원래부터 대첩비가 이곳 고소대에 건립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대첩비는 원래 위치는 건립 당시인 조선시대(광해군)에는 '동령현'(충무동 지역)이었다. 오횡묵(1834∼1906)의 시문집 <여수 잡영(雜詠)>은 당시 오횡묵 여수군수가 여수 106곳을 둘러보고 7언 4절 한시로 해당 지역을 적은 기록이다. <여수 잡영>에는 충무공비각(대첩비각)에 대해서 "충무공비각은 서문 밖에 있고 곁에 타루비도 있다(忠武公碑閣. 在西門外又有墮淚碑)"로 적었다. 정확한 위치는 '서문 밖'이다.
 

호좌수영지 의 좌수영성지도 1847년 발간한 이 지도에는 ‘충무공 비각’이 서문 밖에 연등천과 큰샘골 근처이다. ⓒ 오병종


1847년 발간한 '호좌수영지' 지도에는 '충무공 비각'이 서문 밖에 연등천과 큰샘골 근처에 위치한 것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동령소갈' 비문에도 "동령현에 대첩비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 동령현이 충무동 지역이고, 지금은 충무동 도로명 주소 '동령현길'로만 남아 있다.

1931년 동아일보 6월 2일자 이광수의 '충무공유적순례(7)' 기사에는 그는 5월 25일에 여수에 들렀던 기행문을 신문에 기고했다. 거기엔 이런 기록이 있다.

"충무공 비각은 옛날 좌수영 서문 밖 지금은 여수시가의 서단에 있습니다. 서남향의 정문과 동쪽으로 협문이 잇고 그 문을 들어가면 비각이 있는데...."

춘원 이광수도 대첩비각 위치를  '옛 서문 밖', '여수시가의 서단'이라고 적었다. 현재의 고소대는 아니다.
 

충무동에 위치한 대첩비각 사진 일제강점기 전국 관광엽서 중 여수 충무공 비각의 당시 모습 ⓒ 수원광교박물관


여수시는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동령현' 지명과 '서문 밖'의 정확한 위치를 고증해 대첩비가 '원래 세워졌던 곳'을 찾아서 그 곳에 표지판을 세워 '대첩비 원래 건립된 곳'이란 안내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현재 위치에 있는 고소대의 대첩비 안내판에도 "원래 위치는 당시 동령현이었는데 지금의 충무동이었다. 충무동에서 일제 강점기에 비각이 헐리고 해방 후 다시 대첩비를 찾아와, 일제 강점기 신사터에 신사를 허물고 고소대인 지금의 위치에 복원하였다"는 정도의 표기를 해줘야 상세한 안내가 되리라고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복지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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