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방학 출신 싱어송라이터 정바비, 성범죄 피고인으로 법정 서는 중

[인터뷰] 재판방청 연대활동 및 반성폭력 활동가, 연대자 D

검토 완료

이현주(hyunjoo.lee)등록 2022.09.06 05:21
공동소송 커뮤니티 화난사람들에서 리셋(ReSET) 활동가들이 진행 중인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 엄벌 릴레이 탄원' 프로젝트는 작년 4월에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리셋이 엄벌탄원을 모으고 있는 대상은 싱어송라이터 '정바비'(본명: 정대욱)이고, 9월 5일 기준 4,146명의 시민분들이 탄원인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혼성듀오 '가을방학' 전 멤버로 감성 짙은 노래를 만들었던 '정바비'. 그는 성범죄 가해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2019년과 2020년 서로 다른 여성들을 불법촬영하고 폭행한 혐의입니다(이 중 피해자 한 명은 극단적 선택을 했고, 피해자의 유족이 재판을 진행 중). 올해 8월 10일 '정바비' 재판의 4차 증인 신문이 있었습니다. 지난 6월 발매된 BTS 'Proof' 앨범에 '정바비'가 작업에 참여한 수록곡 'Filter'가 그대로 실리면서 다시 한 번 '정바비'의 재판이 주목 받았습니다.  
▶관련 포스트 : 다시는 'N번방'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서 뭉쳤습니다 [ReSET, eNd 인터뷰]

화난사람들은 '정바비' 재판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을 다수의 화난사람들 독자분들을 위해 '정바비' 재판을 모니터링 중인 연대자 D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연대자 D는 다수의 성범죄 재판을 방청하면서 피해자와 연대하는 한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활동가입니다. 

이 인터뷰에서 화난사람들은 연대자 D가 지금까지 펼친 활동, '정바비' 재판 근황,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폭넓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연대자D는 누구?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연대자 D: 안녕하십니까, 저는 성폭력 피해생존자이자 반성폭력활동가 연대자D라고 합니다. 2014년 이후 성폭력 피해자들 곁에서 일대일 연대 활동을 해왔습니다. 일반 시민 대상의 수사·재판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사법시스템 관련 전문가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습니다. 반성폭력활동가 및 단체들과의 연계, 언론 감시 및 협업, 매뉴얼 작성 등 여러 가지 연대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판을 지치지 않고 방청할 수 있었던 힘  
Q. 지금까지 많은 성범죄 재판을 방청하며 연대활동을 벌이셨는데요, 활동을 하시는 동력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대자 D: 처음에는 제 사건 판결을 제대로 받아내기 위해, 그 다음에는 제가 연대하는 피해자들 사건의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는지를 보기 위해, 그리고 그 후에는 전국 법원에서 진행되는 성범죄 재판의 비교분석 및 감시를 위해 방청연대교육 및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연대의 동력은 우선 2010년 성범죄 피해를 당했던, 홀로 견뎠던 제 자신이며, 이제는 저와 연결된, 그리고 앞으로 연결될 사람들 그 자체입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정바비 재판은? 
Q. '정바비' (본명 정대욱)의 재판도 방청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8월 10일 4차 증인신문이 비공개 재판으로 전환되었고 앞으로 예정된 증인신문도 비공개로 전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방청하셨던 재판은 어떤 것이었고, 재판 소감은 어떠했는지 말씀 부탁드려요. 

 
연대자 D: 2022년 8월을 기준으로 '정바비'의 불법촬영 및 폭행 등 사건 재판은 총 4차례 진행되었습니다. 2022년 1월, 3월, 5월, 8월입니다. 이 중 저는 5월에 있었던 3차 공판을 방청했고, 입정(법정에 들어가는 것) 후 바로 퇴정(증인신문 비공개 전환)했습니다. 
 
당시 저는 일반 시민들 대상으로 서울서부지법 현관 앞에서 재판모니터링/방청연대 교육을 진행했으며, 이미 피고인 정 씨 측이 증인신문을 거의 대부분 비공개로 전환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특별한 소감은 없었습니다.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비공개 전환은 흔한데, 이번 재판처럼 피고인 측의 적극적인 요구로 비공개 심리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는 않습니다. 현재 피고인 정 씨 사건은 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포진된 유명 법인이 맡고 있어 실제 '다윗과 골리앗'으로 비견되고 있습니다.

재판의 비공개 전환, 흔한 일일까? 
Q. 어떤 이유로 8월 10일 재판이 비공개로 전환되었는지 혹시 재판부로부터 들으신 게 있으신가요?

 
연대자 D: 일반적으로 재판은 공개가 원칙입니다. 증인신문의 경우 역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공개됩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 재판의 경우 비공개로 전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게 되면, 당사자 검사, 피고인 측의 요청 외에도 피해자의 요청, 재판부의 직권에  의해 비공개로 전환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1차 공판 혹은 공판준비기일이나 결심공판(검사의 구형과 피고인 측의 최후변론, 최후진술 등이 이 때 진행), 선고는 공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사건 재판은 현재 검사가 신청한 증인에 이어 피고인 측이 신청한 증인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지고 있는데, 여러 가지 이유(예: 공소사실/범죄사실 관련 상세 내용 외부 유출 우려, 사생활 유출 우려 등)로 비공개로 전환 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 8월 10일 열린 4차 공판의 경우, 5월 25일 열린 3차 공판처럼 비공개로 전환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서부지법 관계자에게 증인신문이 이어질 것이므로 비공개로 전환하겠다는 정도의 내용만 전달받았습니다.

4천 명이 함께 하는 '정바비' 엄벌탄원,
아직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Q. 현재 화난사람들을 통해 리셋(ReSET)은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 엄벌탄원'의 일환으로 '정바비'의 엄벌 탄원서를 받고 있습니다. 탄원에 아직 참여하지 못한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연대자 D: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검사 측과 피고인 (가해자) 측이 당사자) 재판 참여에 많은 제한이 있습니다. 그러니 제3자라고 할 수 있는 일반인들의 엄벌 탄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피해자 본인의 엄벌 탄원도 강력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들의 탄원서는 그 자체로 재판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겠으나, 현재 검사 한 명으로 진행 중인, 그것도 대형 로펌을 선임해 강력하게 방어 중인 피고인 측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들이 이 재판을 지속적으로 감시, 기록, 목격하고 있음을 전하는 것은 사법감시의 일환이 될 수 있습니다. 
 
엄벌탄원이라는 행위 자체가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의 움직임입니다. 더 나아가 법정이 피해자들이 고립되는 섬이나 권위적인 판사의 성으로 남지 않도록, 법정을 광장으로 만들어 감시하는 첫걸음, 바로 탄원서 작성에서 내딛을 수 있습니다. 감시가 사라진 시스템은 망가집니다. 시민 여러분의 힘을 보태어 주십시오.

'정바비' 재판 외에
연대자D가 지켜보고 있는 재판은? 

Q. 연대자D님이 최근 관심을 갖고 방청 중인 재판은 무엇인가요?

 
연대자 D: 전국 단위로 재판 방청을 지속 중이라 특정한 재판을 고르기란 어렵습니다. 여성 대상 성폭력 등 폭력 및 살인 사건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여러 사건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디지털성범죄 사건 재판으로 국한하자면 '웹하드카르텔'의 대표로 부각된 '양진호'의 1심 재판(9월 선고 예정), '박사방'의 '조주빈, 강훈'의 1심 재판(별건/9월 변론 재개), 'W2V(웰컴투비디오)'의 '손정우' 관련 범죄수익은닉 등 2심 재판(10월 시작)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여성 대상 폭력 및 살인사건은 많아 다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책을 낸 연대자D,
그녀가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인에게 하고픈 말  

Q. 성범죄 피해자에서 연대자로 거듭나며 활동한 기록을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라는 책으로 내셨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연대자 D: 피해자분들에게 늘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살아요, 살아만 있으면 (제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라고요. 저는 이제 생존자에서 연대자로 위치를 바꾸면서 여러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해서 여러분을 늪에서 건져내고, 함께 길을 찾아 걸으며, 광장으로 안내할테니 '일단 어떻게든 살아만 있어요.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피해자의 옆에 있는 이들에겐 저 역시 한 명의 지지자이자 연대자로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깜냥을 헤아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때로는 진심만으로 지속하기 어려운 게 연대일 수 있으니까요. 저 역시 피해자였던 때 스스로를 용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었는데, 그런 피해자를 부디 너른 마음으로 바라봐 주십시오. 물론 그렇다고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몰입을 하거나 피해자를 통제하려 들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러면 연대 자체가 틀어지기도 하니까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 
Q. 앞으로 방청연대 외에 어떤 일을 더 해 나가고 싶으신가요?
 

연대자 D: 원래 방청연대는 연대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습니다. 그간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이제는 좀 줄이고 쉬라는 말을 듣고 있는 상태라 더 하고 싶은 일을 늘어놓다가 혼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시스템 감시와 변화를 위한 일을 더 세밀하게 하고 싶습니다. 사법감시를 위한 시민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 매뉴얼 개발, 문화예술체육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의 협업, '싸움 이후' 피해자들의 회복과 일상 재구성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 개발 등 할 일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고민하고 공개할테니 같이 길을 고르고 다듬어 광장으로 향했으면 합니다. 저절로, 알아서, 당연하게 찾아오는 변화란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며칠 전인 8월 29일 하이브 측은 BTS의 'Proof' 앨범 Collector's Edition을 발매했습니다. 29만 7천원이나 하는 이번 앨범이 과연 그 값어치를 하는지 발매 직후부터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일부 팬들은 이번 앨범에서도 '정바비'가 참여한 곡 'Filter'가 수록되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바비' 재판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직까지 엄벌탄원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도 선고 전까지 '정바비' 엄벌탄원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연대자 D의 말처럼 성범죄 재판의 당사자는 검사와 피고인 측이지만, 시민들은 엄벌탄원에 참여함으로써 법정을 향해 '우리도 지켜보고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피해자에게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게 하고, 법원에게는 '법원은 공공의 감시를 받는 영역'임을 다시금 일깨워줘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리셋은 다른 성착취 가해자 엄벌탄원과 마찬가지로 화난사람들에 모인 엄벌탄원서를 모두 법원에 직접 제출할 예정입니다. 화난사람들은 '정바비' 재판의 판결이 날 때까지 이 재판 소식을 여러분께 빠짐 없이 전해드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화난사람들 웹사이트(https://www.angrypeople.co.kr/) 포스트 메뉴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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